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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가을은 언제나 풍부한 사유이다.
그 가을의 서정도 이제 그 가장 내밀한 골짜기를 거의 통과하여 겨울의 침잠속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벌써 첫눈이 내렸고, 거리마다 가득히 쌓인 낙엽들도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계절의 한 싸이클이 끝나가는데 대한 연민에 잠길 것이다. 생의 환희가 분출되는 봄, 여름과 달리, 가을과 겨울은 존재하는 것의 참을 수 없는 사색이 일어나는 계절이다. 이 연민과 사색의 계절에 나는 책 한권을 만났다.

"이 아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마라"- 김혜자.

경기여고를 나와 이화여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여자. 전원일기에서 마음 착한 시어머니역할로 우리들의 인식속에 각인되어, 무슨 화려함이나 섹시계열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탤런트. 어딘지 좀 모자란듯한 역을 잘 해내는 배우. 이런 것들이 이 글을 읽기 전까지 나의 그녀에 대한 앎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 책을 보고 나는 경탄과 존경의 깊은 느낌으로 그녀를 새로 정의하게 되었다. 한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란 사실 얼마나 표피적인 것인지! 그녀의 깊은 사색의 세계는 원래 현실세계의 소란한 화려함이나 성공 같은 것과는 다른 코드의 가치체계이다.
그녀는 지성과 감성의 심원한 세계에 뿌리내린 최고의 지적 인간으로 느껴진다. 책을 읽는 것과, 여행과 자유가 가장 좋아하는 것인 김혜자는, 정작 여행할 시간을 내지 못해서 늘 아쉬웠다.

그러다가 1992년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사랑이 뭐길래를 끝내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체코의 프라하와 헝거리의 부다페스트 여행을 꿈꾼다.
그러나, "신이 그녀를 데려다 준 곳"은 그 낭만의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고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였다. 그리고 이 여행은 그녀의 심저에 내재되어있던 멈출 수 없는 휴머니즘과 용감한 행동주의에 불을 지피고 말았다. 그 후 그녀는 소말리아, 르완다, 케냐, 우간다, 방글라데시, 인도, 캄보디아.. 지구상 질병과 가난, 전쟁과 폭력이 그치지 않는 곳을 끊임없이 드나들며 어린 희생양들을 가슴에 끌어안고있다.

그녀는 말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내 눈을 빌려주고 싶네. 이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라고.. 내 두팔을 빌려주고 싶네. 이 아이들을 꼭 껴안아주라고"

인간의 반 문명에 대한 가장 생생한 증언인 이책을 읽어가며, 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 모든 고통과 몽매함에 대하여 한없이 슬퍼졌다. 미개한 사회에 부단히 전개되는 가난과 질병, 전쟁과 살육.. 그 과정에서 희생당하는 부지기수의 어린 인명들.
작가의 절규처럼, "신은 왜 이 고통의 땅을 창조하고 인간의 그 무지몽매함을 이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인간의 삶에 대한 여러가지 가치들이 새롭게 반추되고 문명의 반문명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갖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용감하고 뜨거운 여자, 김혜자에 대하여 끝없는 경애를 멈출 수 없다.

"사람들은 내게 묻습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아이들을 찾아가는 일은 언제까지 할건가요? 몇년 채우고 그만 둘 건가요?" 그러면 나는 대답합니다. "그 일은 내 생명이 다 할 때까지 할 꺼에요. 왜냐하면 그건 드라마가 아니니까요"

마지막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있는 이 사유의 시간들에,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그건 우리에게 또 하나의 깊은 사유의 계기가 될 것이다.


<제공 이종기(27기) 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