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自由揭示板 中에서

70고희에 설악산 대청봉을 넘다.

(우리 13회 동문들이 70세 고희에 특히 저는 2급장애인으로서 설악산 대청봉을 다녀 온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서울상대 13회 동기생들이 설악산 등산을 계획한 것은 금년 초 경연소 형이 88산악회 회장으로 취임 하면서 부터이다. “입학 50주년 및 고희 기념 공용능선 등산” 을 기치로 내 걸고 동창들의 동참을 호소하였다. 5월 22일로 산행 일자를 정하자 고희의 나이에 설악산 최고봉 대청(1708m)을 넘어 공용능선을 간다는 기대에 참가 할 15명은 모두 가슴 부풀어 있었다.
설악산(雪嶽山), 눈(雪)이 덥힌 큰 바위 산(嶽), 이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가 대청봉 즉 큰(大) 푸른(靑) 봉우리(峰)다. 높은 산을 멀리서 보면 다 푸르게 보이니 대청이라 불렀던가? 그러면 모든 높은 산 주봉을 다 대청봉이라 불러야 할 터 인데…. 왜 하필 설악산만 대청봉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15명의 88동기 산악회원들과 함께 서울 동부고속 터미널에서 양양행 금강고속 우등버스에 오른 것이 2005년 5월22일 8시 반. 한강을 오른 편에 끼고 팔당땜의 북쪽 기슭 구도(舊道)와 나란히 난 고속도로를 달려 양평, 홍천을 지나고 인제 원통을 차 창에 담으면서 신록이 무성한 한계령(寒溪嶺)을 넘어 국립공원 오색분소 앞에 도착한 것은 11시 30분. 서둘러 각자 등산 배낭을 챙겨 대청봉을 향한 것이 11시 45분. 오색분소가 462m이니 앞으로 1246m를 올라 가야 했다. (옛날 승국사라 불리던 절에 다섯 가지 꽃이 예쁘게 피었다 하여 오색석사(五色石寺)라 하고 여기서 오색이라는 지명이 연유되었다고 전한다.) 심준보 형의 따님이 정성스레 싸준 비스켓과 포도씨 등 간식을 차 안에서 먹은 탓에 점심은 한 시간 후 하기로 하고 서둘러 산행을 시작하였다.

날씨는 약간 흐리고 바람도 불어 등산하기에는 아주 좋았다. 오색분소 바로 뒤에 흐르는 계곡에는 철 다리가 놓여 있었고 철 다리 넘어 가파른 경사 길은 옛날과 같았다. 출발을 하자 70세 고희의 등산객들도 서로 뒤질세라 줄기차게 절벽 같은 산길을 올라 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정신 없이 오르다 보니 제1 쉼터(오색에서1.3km) 가까이 왔다. 거기서 옹기 종기 등산 길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출발 약 한 시간 후였다. 거기까지는 모두 큰 차이 없이 올라 왔다.

한 시간이 지나자 잘 가는 사람들과 못 가는 사람들의 거리가 벌어 지기 시작했다. 선두 그룹인 박수환, 노경진, 윤하균, 이희순 등은 벌써 보이지 않았다. 필자는 후미에 속하였다. 벌써 물을 계속 마시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올라 갔다. 첫 경사 길을 약 600m 지나면 다음부터는 좀 완만한 등산 길이라는 옛날 생각이 착오였다. 계속 경사 길이다. “제1쉼터”에서 “설악폭포”로 가는 사이 오름 길에서 10년 전 산 지팡이가 “쨍” 하며 두 동강이 났다. 1996년9월에 중풍으로 2급 장애자가 된 필자는 낭패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냥 가자고 마음 먹었는데 박해주 형이 나무 막대기를 집고 내려가는 한 아줌마에게 그것 버릴 것이 지요? 하니까 선득 아주머니는 “예” 하면서 약 1m 되는 막대기를 건네 주었다. 나무 토막 지팡이가 하나 생겼다.

빗방울이 하나 둘 날리기 시작했다. 내려 오던 사람들이 대청에는 눈발도 날리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높은 산의 일기는 변화 무쌍한 것. 더워서 땀은 줄줄 흐르면서도 스치는 산 바람에 옷 자락은 찬기를 느낀다. 경연소 회장이 제일 후미에 오는 대원들을 돌보면서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한 손에는 큰 종이 봉투에 김밥과 김치 등을 넣어 들고 올라 오고 있다.
출발부터 두 시간 반이 지났을 무렵 후미 그룹은 설악폭포(제1쉼터에서 1.2km)라고 표시 되어 있는 곳까지 왔다. 빗방울이 날리니 바위는 미끄러워져 악산(岳山)을 오르기는 더 힘들었다. 몇 번을 쉬었을까? 설악폭포 표시 판에는 여기가 해발 920m라고 적혀 있다. 거리로는 5km(오색?대청)의 반은 왔으나 고도는 아직 멀었다. 앞으로 훨씬 더 큰 급경사가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산 구기터널에서 대남문까지 겨우 한 시간 반 등산에 익혀온 체질로는 감내하기 힘든 산행이다. 더욱이 6~7kg 내외의 짐을 지고서 말이다. 그래도 인간은 궁지에 몰리면 자기 보호본능이 작용하여 숨은 힘이 어디선가 나오는 모양이다. 좀 앉아 쉬면 또 일어서서 걷는다.

선두 팀이 얄미우면서도 선두를 따라 가야 한다는 강박감을 불러 일으키니 힘든 산을 오르는 추진력이 되기도 한다. 나 대신 올라가 줄 사람이 없으니 죽으나 사나 자신이 걸어 올라 가야 한다. 등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스스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밝혀야 하고(自燈明)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自歸依)해야 하는 불교수행과 같다. 등산은 자기 몸과 마음에 인내와 솔선을 가르치는 자각(自覺) 수행이다. 이렇게 속으로 외치며 수 없는 철 난간을 지나 물기 묻은 바위 길을 걸어 오르고 또 올랐다.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힘들어 올라 가는 것을 보고 나이를 묻기에 “우리 고희 기념 등산 왔소” 하니 모두 놀라며 말한다. ”어르신네 정말 대단하시다”고. 속으로 우리가 자랑스러웠다.

어느 사이 제2쉼터(설악폭포에서 1.3km)가 보였다. 아직도 폭포소리의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을 보니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 저 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다 왔는데… 시간은 출발 후 4시간이 넘었다. 바람도 차차 거세어 지고 기온도 더 내려 가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인 듯한 철 계단을 올라 평평한 언덕길에서 돌무지를 의자 삼아 흩어져서 쉬는데 눈앞에 진달래가 곱게 피어 있었다. 이종구 형이 탄성을 지르며 5월 하순에 피는 진달래를 보라고 외쳤다. 이형은 진달래 꽃잎을 하나 따서 입에 넣었다. 설악산 정기를 먹은 것이다.

정상에 가까이 올수록 세찬 바람이 불었다. 선두그룹, 이희순, 박수환, 윤하균, 김호영, 이상경, 노경진 등은 보이지 않고 후미 세 사람을 뺀 나머지 6명이 정상인 대청봉에 이른 것은 출발 후 다섯 시간이 지날 무렵이었다. 대청봉 ? 오색 5km(제2쉼터에서 대청까지는 1.2km), 대청-중청 0.7km라는 표시 판을 보는 순간 아! 이제 다 왔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14년 전 1991년 회사 직원들과 이 길을 4시간에 오르던 기억이 났다. 그때 머물렀던 대청 대피소는 낡은 콘테이너 박스같이 되어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그러나 대청봉 주변은 잘 정돈되어 있어 설악의 주봉답게 가꾸어져 있었다. 안영신 형이 먼저와 대청봉 돌 비석 뒤에서 줄에 맨 풍경을 땡그랑 땡그랑 울려주었다. 높은 산, 거센 바람소리 속에서 풍경소리를 들으니 인적의 따스함을 느꼈다. 바람이 어떻게나 세차게 부는지 웃옷을 배낭에서 끄집어 내어 입고 모자를 동여매어도 거센 바람에 모자와 몸이 날아 갈듯하였다. 바람이 하도 심하게 불어 후미를 기다릴 수 없어 대청에 남아 있는 사람 6명이 지나가는 등산객에 부탁하여 필자의 디카로 기념 촬영을 하였다. 1985년 한 독지가의 열의로 만든 “대청봉, 1708m”라는 비석을 배경으로--. 올라 올 때는 조그마한 디카도 짐이 되었으나 이제 우리 모두 70 고희니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대청봉을 사진에 담아 먼 훗날 자손들이 보게 하면 좋은 기념이 되리라.

대청봉 석주가 서 있는 뒤 켠에는 바람이 잔잔했다. 거기서 안영신, 박해주 형과 후미를 기다렸다. 그 사이 초코렛으로 요기도 하였다. 물도 한 모금 마셨다. 정신이 들었다. 거센 바람 때문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뿌연 실 안개가 떠 있는 듯 시야가 청명하지 못했으나 동해의 푸른 바다와 대청봉 아래 펼쳐지는 설악의 전경이 눈에 들어 왔다.
바로 발 아래가 천불동(千佛洞)계곡, 천의 돌 부처가 동내를 이루고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모습이 석양에 비치어 수려하고 웅장한 자태를 뿜어 내고 있었다. 왼편으로 눈을 돌리니 내설악과 외설악의 경계인 공용능선(恐龍陵線)이 무서운 용트림을 하는 용의 모양을 하고 멀리 마등령까지 뻗어 있다. 그 왼쪽은 그 이름도 유명한 용아장성(龍牙長城)이 멀리 눈에 들어 왔다. 발 밑의 내외 설악을 바라보고 있으니 금강산은 수려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나 수려하지 못하다. 설악산은 수려하기도 하고 웅장도 하다(金剛秀而不雄, 智異雄而不秀, 雪嶽秀而雄)는 고려 말 강원도 안념사(安廉使 - 지금의 도지사) 안축(安軸)의 시가 생각났다.

한편 여기 어디에 큰 푸른 빛, 대청(大靑)이 있는가? 설악산에서 제일 높은 곳이기에 대(大)자를 부친 것은 이해가 가도 “푸른색”은 어디에서 왔는가? 무슨 연유로 옛 사람들은 대청이라 불렀던가? 속초시 문화과(033-633-3171)의 정종진씨 왈 동국명산록에는 그저 멀리서 보니 푸르더라 하여 대청이라 했다지만 높은 산은 멀리서 보면 다 푸르다.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 우리나라 명산이 다 그러하듯이 설악산에는 불교관련 유적과 지명이 많다. 천불동을 비롯하여 금강굴, 불교와 연이 많은 용의 이름을 딴 공용능선, 용아장성, 사찰로는 신흥사를 비롯한 백담사, 오세암, 봉정암(鳳頂庵) 등. 그런데 불교는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이 으뜸이다. 관세음보살의 위신력(威信力)을 노래하는 천수경의 핵심인 주문(呪文) “신묘장구 대다라니”에서 싼스크리트어인 “니라간다야”는 청경관음(靑徑觀音)을 의미한다. 청경관음이란 목이 푸른 관세음 보살을 의미한다. 악용(惡龍)이 사람을 해치려 하자 관세음 보살은 용으로 화신하여 그 악용의 목을 물었는데 그 악용의 독(毒)이 용으로 화신(化身)한 관세음보살의 목으로 넘어가 푸른 색갈이 되어 목 푸른 관세음이 되었다고 한다. 대청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천의 부처상(천불동)이 다 관세음보살(대청봉)을 옹립하고 있으니 대청봉은 목 푸른 관세음 보살이며 따라서 푸를 청(靑)자를 써 대청이라 하지 않았을까? (속초시 문화 과에서는 필자 식으로 해설하려면 더 많은 고증이 필요 하다 했다.)

필자 혼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거센 바람을 피해 중청 대피소에 들어서니 훈훈한 온기가 몸을 녹이고 지하 숙소에 내려가 자리를 정하니 아늑한 내 집에 온 기분이었다. 오색에서 떠난 지 5시간 15분. 선발대는 오후 4시 반에 숙소에 도착했다니 선발대가 대청에 이른 것은 4시 15분경이다. 그들은 대청까지는 4시간 반 만에 왔고 후발대는 5시간이 넘어 걸린 셈이다.
저녁 6시가 넘자 대피소 밖(대피소 안에서는 취사금지) 정문 앞에 큰 마루의자를 모아 놓고 바람이 좀 한적한 곳에 노천 파티장을 만들었다. 김호영 총무가 어렵게 준비하여 고생스럽게 나누어 지고 온 돼지 양념고기 다섯근을 이희순, 윤하균, 김호영 형이 등산 버너 위의 적세에 굽고 연신 종이 접시로 옮겨 놓는다. 옮겨 놓기 무섭게 고기가 없어 진다. 허기를 메우면서 김치와 다른 안주를 곁들여 벌린 야외 소주 파티! 모두들 웃으며 즐거워했다. 노천파티는 이번 산행의 특미 중 특미였다. 거센 바람을 피해 어깨를 맞대고 연신 소주를 마시며 안주를 먹으니 등산의 피로와 중청의 저녁 한기가 멀리 동해로 달아나는 듯 했다. 스웨터를 입어야 할 정도로 날씨는 차가웠다. 바람이 계속 세차게 부니 체감온도는 영하였다. 노경진 형의 겨울 파카가 제격이었다. 파티가 끝난 후 자리를 잡고 담요를 배정 받아 각자 자리에 누웠다. 9시를 조금 지나 소등을 하니 설악산의 첫 밤은 코고는 소리, 끙끙대는 소리, 뒤적이는 소리, 부스럭대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깊어 갔다.

23일 다음 날은 아침 5시에 기상하여 5시 반에 희운각(喜雲閣)으로 향했다. 아침은 희운각에서 하기로 했다. 소청으로 향하는 하산 길에 들어섰다. 작은 참나무, 싸리나무, 눈 잣나무 등 키가 작은 나무들의 잎이 무성한 오솔길을 따라 소청에 오니 용아장성과 공용능선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능선을 찬찬히 바라볼 겨를도 없이 선발대는 벌써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소청부터는 급경사를 내려오는 돌길이라 걸음을 하나하나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지팡이가 없는 장애인인 필자에게는 균형을 잡아가며 돌길 경사면을 신속히 내려 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내려오는 길에서는 나무 지팡이가 무용지물이었다. 필자의 걸음이 느리니 모두들 다 앞질러 지나갔다. 뒤에는 경연소 회장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따라 왔다.
넙적 다리가 조이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출발 이 후 한 시간이 지났다. 지도상 시간으로는 희운각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아직도 하산 길에서 헤매고 있었다. 앉아 쉬며 물을 마셨다.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 다시 걸었다. 옛날 일본의 북 알프스 산행 길에서 1km의 급경사를 3시간 만에 내려 오며 고생하던 일이 회상되었다.

산행에는 지팡이가 이토록 중요하구나. 특히 중풍환자인 필자에게는-- 산행에서 지팡이는 아들보다 낫다고 한 속담을 연상했다. 전과는 달리 급경사 길에는 다 철 다리가 놓여져 있어 오르내리기에는 편리 했으나 경사도는 오히려 더 급해서 넙적 다리가 바늘로 찌르듯이 아픈 필자에게는 더 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래도 필자 뒤에 경연소 회장 외에 안영신, 박기능 형이 동행하고 있으니 마음 든든하였다. 산행에는 “나” 아닌 “우리”가 있기에 행복 했다. 하도 고생하면서 내려오다 보니 대청봉에서 희운각으로 내려오면서 신성봉(神聖峰)에 들리려 했던 생각을 잊어 버렸다.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도(金剛山圖) 같은 비죽비죽한 암봉 신성봉에 들려 거기서 천불동을 내려다 보아야 진짜 천의 부처 얼굴을 볼 수 있다는데--

희운각에 이르니 벌써 7시. 지도상에는 중청에서 희운각까지 하산 시간 1시간, 올라가는 시간 1시간 반인데 하산 하는데 올라가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선발대는 아침식사를 끝내고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일찍 온 노경진 형은 45분 만에 내려왔다는 등 건각 담을 즐기고 있었다. 서둘러 우리도 아침을 하고 계곡 물을 물병에 담은 후 커피를 한잔 하고 회장의 집합소리에 대피소 앞 마당에 다 모였다.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이었다.
어제와 오늘 아침 각자의 산행 실력을 평가 해 볼 때 회장은 당초 산행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다 공용으로 가기는 불가능하니 오늘 희운각에서 천불동(5시간 코스)으로 내려 갈 사람과 공용능선(7시간 코스)으로 갈 사람을 선별하는 하는 순간이었다. 먼저 “천불동으로 갈 사람 손을 드시요” 하니까 대부분 다 손을 든다. 15명 중 4사람 즉 안영신, 홍관의, 이희순, 박기능 정도가 손을 들지 않았다.
“고희에 공용능선 기념 등산” 이라는 기치를 내 걸고 시작한 이번 산행의 당초 꿈을 접어야 하는 순간이었다. 70세의 아마추어 등산가가 공용능선을 가는 것은 무리라는 희운각 산장 주인의 경험담이 선발팀에게 모험을 포기하게 한 결과이다. 작전계획을 지휘하는 야전 사령관 처럼 경연소 회장은 구차한 추가 설명도 없이 “모두 천불동으로”라는 즉석 결정을 내렸다. 건각들에게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두 그룹으로 나누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모두의 안전 속에서 산행을 마친다는 회장의 방침을 존중하기로 했다.

좀 쉬고 허기도 채웠으니 한동안은 다리가 덜 아프다가 급경사 길을 내려 오니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천불동 계곡의 경사는 희운각 까지의 경사보다는 덜해도 역시 한동안은 급경사였다. 백옥같이 흰 바위 하상을 소리 내어 흐르는 천불동 계곡의 명경수를 푸른 나무 그늘 밑에 앉아 마음 것 마시며 물에 발을 담그고 쉬어 갔으면--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단체 행동이라 늦으면 산행계획에 차질을 줄까 봐 있는 힘을 다 해 걸었다. 중청에서 입었던 스웨터며 하의를 벗어 배낭에 넣고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찍어 가면서 걷고 걸었다.

천당폭포를 지나 급경사를 한참 걸어 내려오니 양폭포가 나오자 이제 양폭(陽瀑) 산장이 가까워 오는 구나를 느꼈다. 발이 놓여질 돌을 보느라 수려한 천불동 경치는 감상할 엄두도 못 내고 허겁지겁 3시간을 걸어 양폭 산장에 이르니 이제는 안심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선발 대도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내리고 물을 마시며 쉬는 사이 중청이나 희운각 산장에서와 같이 여기서 등산 지팡이를 파느냐고 물어 보았다. 대답은 “노” 였다. 산장이나 대피소에서 지팡이나 전등, 배낭, 아이젠 등 긴급한 등산장구를 좀 팔면 안되나? 산행에는 사전 준비를 각자 철저히 하라는 경고인가?
한자리에 모두 모인 김에 기념 촬영을 하자고 제의하여 양폭 산장 앞에서 전체 15명이 처음으로 디카 사진을 찍었다. 촬영하는 순간 의자 밑으로 예쁜 다람쥐들이 오가며 함께 놀자했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아침 먹을 때도 다람쥐들이 식탁 밑을 오가며 다람쥐와 사람이 한 몸(同體)임을 알렸다. 설악산에 많다는 사향노루, 산양, 여우, 수달은 멀리서 우리를 구경만 하고 있는가?

양폭 산장을 조금 지나 오다가 뒤에 오던 경연소 회장이 필자가 집고 가는 나무 토막 지팡이를 그제야 보고 버리라고 하면서 자기 등산 지팡이를 주었다. 구세주가 따로 없다. 비록 지친 다리였으나 새 지팡이를 얻고 나니 다리가 4(?)개가 되어서 그런지 훨씬 몸의 균형이 잘 잡히고 걷기에 편했다.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오련폭포를 지나 귀면암(鬼面庵) 고개를 넘을 때는 새로 힘이 생기는 듯 했다. 그 이후는 철 다리를 걷던지 아니면 평탄한 돌길을 따라 걸었다. 걸으면서 자기 몸을 살펴보며 걷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여유도 생겼다. “나의 다리는 걷고 있다. 나의 다리는 걷고 있다. 계속 하여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다리에 통증이 좀 가셔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 햇살에 비치는 계곡 물은 밑에 있는 바위 색에 따라 수정(水晶)도 되었다가 비취도 되곤 했다. 푸른 나무 잎이 가지를 뻗고 출렁출렁 춤을 추니 물길도 따라 춤추듯 소리 내어 흐른다. 이런 경관을 국제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없을 까 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너무나 속세와 다른 “함이 없는” 무위(無爲)의 절경이었다. 중국의 장가계 절경이라는 십리화랑(十里畵廊)이나 금편계곡(金鞭溪谷)을 이에 비할 손가!

1990년 한국은행 창립 4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당시 독일 연방은행 부총재 슈래신저 박사(1991년에 총재로 승진) 부부가 천불동-희운각-대청봉 코스를 등반 하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산악장교출신으로 평소 등산을 매우 좋아하였다. 그가 천불동과 설악 전경을 보면서 뷰티풀(beautiful), 원더풀(wonderful)을 수도 없이 말했다고 한다. 설악의 풍치는 세계 어느 경관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양폭 산장에서 2시간 걸으니 드디어 비선대(飛仙臺)에 이르렀다. 금강굴(金剛窟)로 올라가는 갈림 길에서 큰 철 다리에 이르니 이제서야 험하고 힘든 산행이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비선대 식당에 자리를 잡고 파전, 감자전에 막걸리, 소주로 마른 목을 추기니 그때가 12시. 6시간 반의 오늘 산행이 끝이 난 것이다.
한 시간여 점심 파티가 끝나자 설악동으로 향하였다. 비선대에서 3.0km 한참 걸었다. 창연한 숲이 우거진 평지 길이고 지팡이도 있어 걷기 좋았다. 신흥사 대불 앞을 지나 설악동에 이른 것이 오후 2시. 오늘 저녁을 예약한 바다회집 주인이 몰고 온 봉고차가 설악동 매표소까지 왔다. 이제부터는 정말 좋은 일만 남은 샘이다. 매표소에서 바로 척산 휴양천 온천을 갔다. 뜨거운 온천 물에 몸을 담그니 이틀간의 산행에서 쌓인 피로가 가셔지고 새사람이 된 기분이다.

목욕 후 속초 한화콘도에 와 3방에 나누어 투숙했다. 박해주 형은 급한 회사 일로 연락을 받고 목욕 후 바로 서울로 떠났다. 함께 저녁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1시간 반 가량 각자 콘도에서 쉬었다. 6시경 봉고차가 와 속초 영랑호 부근의 장지동에 있는 바다회집으로 떠났다.
그 집 2층에서 동해 멀리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을 바라 보며 냉장고에 먼저 제어 놓은 싱싱한 광어, 도다리, 숭어, 돔 등 바다 물고기 회로 안주를 삼아 소주 잔을 기울였다. 힘들었던 어제 오늘 산행은 벌써 까마득한 옛일로 돌아가고 그저 땀을 많이 흘린 후 목욕하고 마시는 소주의 감미로움과 목청 큰 사람들의 흥에 겨운 정담만이 2층 방안에 가득 하였다. 경연소 회장의 효자 효녀들이 마련한 아빠의 고희 잔치를 이 소주파티로 대신 한다 하니 그 뜻(意)과 흥(興)이 어우러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부어라 마시어라 술잔을 나누었다.

흥에 겨운 소주파티를 즐기면서 어제 오늘 설악산 산행을 뒤 돌아 보니 이번 산행이 88산악회 회원들 상호간의 우정지수(友情指數)를 한단계 더 높여 놓았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노년을 더욱 건강하고 화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한화콘도에 돌아와 흥을 더 풀기 위해 콘도 안에 있는 노래방을 찾은 주객들이 방으로 돌아와 함께 잠이 드니 88산악회 2005년 설악산 산행은 이것으로 끝(산행참가자 : 경연소, 김호영, 김승경, 노경진, 박기능, 박해주, 박수환, 심준보, 안영신, 우재구, 윤하균, 이상경, 이종구, 이희순, 홍관의 이상 15명)

<글-율천 우재구(13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