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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여행기

1. 연길, 용정을 둘러보고 백두산 밑 이도백하로...

7월 12일 월요일 9시 15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46명 일행은 2시간 반 걸려 예정시간인 10시45분(현지시간 1시간 늦음) 연길공항에 도착했다. 밖에 나오니 역시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도문에 있는 이건산업 공장의 책임자 두 분이 영접을 해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두 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연길시내로 향하였다. 여행객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비다.시내 한국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작년에 여행한 계림의 한국식당보다 음식이 못한 것 같다. 한식도 아니고 중식도 아닌 중간 형태지만 한국인이 좋아하는 김치가 없다. 된장국 맛도 입맛에 맞지 않는다. 연길이 발전의 낙후지역임을 음식문화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연길(延吉)은 길림성에 속한 연변(延邊) 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로서 인구의 절반정도가 조선족이라고 한다. 연변(延邊)은 총인구 약208만 명 중 약 82만 명(43%)이 조선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족의 약 50% 정도가 농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연길(延吉)은 인구 약35만의 도시로 조선족의 문화적 중심지이며 주민의 절반 정도가 조선족이라고 한다. (1999년 기준 숫자이므로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식사 후 연길에서 남서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용정으로 향하였다. 연길은 조선족 자치지역이라 간판의 위에는 한글, 아래에는 한문이 표기되어 있다. 한글도 북한체, 남한체가 공존한다. 미국의 L.A는 한글전용도 있고 한영혼용도 있어 다양하지만 이곳은 통일되어있다. 체제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정부에서 한글을 위에 쓰도록 허용하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가는 길에 우측멀리 비암산 위에 일송정의 정자가 보인다. 독립투사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기에 적합한 장소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두만강의 지류인 해란강(海蘭江)이 용정시내를 가로질러 흐르지만 흐르는 물이 적어 강이라기 보다는 한국의 개천처럼 보인다.

여행경험으로 얻은 판단은 남한(南韓)은 수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용정시는 일제치하 독립운동의 성지라 할 정도로 민족정신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윤동주시인의 고향이고 유명인사를 배출한 학교 들이 있다.교문에 룡정중학교라고 한글로 적혀있고 우측에 대성중학교라고 새겨져 있는 옛 건물이 있고, 다시 그 옛 건물 앞 우측에 윤동주시비(詩碑)가 있다. 구 건물 대성중학교는 역사관으로 쓰여 지고 있다. 여직원이 요약해서 설명을 한다. 대성중학교, 은진중학교, 영신중학교, 동진중학교, 영신여자중학교, 광명여자중학교 6개학교의 합병으로 지금의 용정중학교가 1946년 9월에 설립되었다. 유명인사로는 강원룡 목사, 문익환 목사, 오리선생 전택부, 청년문사 송몽규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이곳이 고향인 윤동주시인은 은진중학교, 평양숭실학교, 서울 연희전문학교를 거처, 일본 동지사대학교 재학 중에 독립운동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나는 문학도는 아니지만 한글 궁서체 붓글씨를 배울 때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를 여러 번 쓴 기억이 있어 더욱 친근감을 느낀다. 한국인의 급한 성질에 비위를 맞추는 것인지 여행스케줄이 바쁜 것을 아는 지 중요한 요점만 설명하는 것으로 끝을 내고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성금을 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나오면서 윤동주 시집을 사천원 주고 샀다. 작년에 상해임시정부건물을 방문하여 브리핑을 받을 때는 감격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이곳은 독립투사들의 활약상을 설명하는 곳이 아니고 학교의 역사를 설명하는 곳이므로 감동보다는 조선자치주의 사립학교로 중국인 학교보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과 전통에 빛나는 학교의 명맥을 유지시켜 주기위해 조그만 돈이지만 장학금으로 도와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버스에 올라 다음 목적지인 백두산을 향하여 달린다. 가이드가 젊은 미혼의 처녀로 세대 차이를 느낀다. 구 세대인 우리는 역사시간에 간도(間島)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간도는 중국 동북 지역 만주의 지린성(吉林省)을 중심으로 랴오닝성(遼寧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일대의 한국인 거주지역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인구는 약 2백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용정이 간도의 수도역할을 한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 용정의 인구는 약23만명 정도로 연길보다 적다. 연길이 더 발전 가능성이 있다. 이번 방문으로 조선족이 거주하는 이지역의 발전이 낙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은 민족으로 이지역의 장래에 관심을 갖게 된다.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사는 남북한, 세계최다의 인구 중국에 얹히어 사는 조선족들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생각이 다른 이 세 가지 집단의 연결고리를 생각하게 된다.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열심히 살아가는 재미 동포들의 경제적 생활수준이 향상되었으며 일례로 뉴저지 알파인 고급주택가에 교민들이 많이 입주해 산다는 말에 위안을 받았고, L.A의 한인들도 과거의 흑인 폭동의 아픔을 딛고 재기하여 고급주택가에 사는 교민들이 늘어났다는 말에 교민들의 장래가 밝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곳의 조선족은 한국으로 밀입국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 보겠다는 생각들이 아직도 지배적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중국의 국력이 커지고 있어서 인지 중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은근히 암시한다. 대한민국 국력의 신장만이 동병상련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소수민족에게 민족자치를 허용하는 중국의 정책이 궁금하다. 자료를 찾아 요약해 보았다.

1) 중국헌법에는 오늘의 중국은 각 민족들이 공동으로 창조한 것임을 명백히 밝혀 놓고 있다.

2) 민족구역자치는 중국 공산당이 1940년대부터 해방구에서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3)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이 수립된 이후 소수민족문제가 하나의 과제로 인식되어 1952년 中華人民共和國 民族自治實施綱要를 발표하여 소수민족자치지구를 허용한다.

4) 현재 민족구역자치를 실시하는 소수민족은 45개이다.

5) 1996년의 통계에 의하면 중국의 총 인구는 12억 2천3백89만 여명이며 그 중 한족이 약 93.3%이고 기타 55개 소수민족이 8.1%를 차지한다. 가장 인구가 많은 소수민족은 장족으로 약1,500만 명이다. 소수민족에 대하여는 법적으로 하나 낳기가 적용되지 않는 다고 가이드는 말한다.

6) 대만의 독립을 저지하는 수단의 하나로 소수민족자치를 허용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요사이 중국의 의도적인 고구려역사 왜곡시도는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독립 가능성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오늘 우리가 머무를 숙소인 백두산입구까지 4~5시간을 달려가야 한다고 한다. 흐린 날씨에 주위에 펼쳐지는 경치는 야산과 논밭이다. 지루하여 지도를 돌려가며 보았다. 직선거리가 아니고 약간 우회하여 달리고 있다. 김승만 왕회장께서는 준비해온 사탕을 돌린다. 일행을 위한 치밀한 봉사정신에 다시 감사를 표한다. 많은 동문들이 간식거리를 돌려서 받아먹기 만하는 나는 미안한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휴게소에서 고구마 말린 것, 붉은 색 껍질의 과일 등을 사서 차 안에서 나누어 먹으며 무료를 달랜다. 오기 전에 장석정 동문이 5년 전에 백두산 관광을 하면서 부인이 귀국 후에 설사로 애를 먹었다는 말을 들어 위가 튼튼하지 못한 나는 먹는 것에 아주 소극적이었으나 지나놓고 보니 기우에 불과했다. 산의 나무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았다. 북쪽 지역이라 한국의 나무보다 키가 적어 보인다. 낙엽송을 유심히 보았다. 역시 키가 작고 색깔도 짙푸르지 않다. 지도에 보니 우리가 머무를 곳이 이도백하(二道白河)이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대관령의 홍송과 같은 소나무가 보인다. 키가 훨씬 크고 곁가지가 없이 쭉쭉 뻗어 올라가서 훨씬 아름답게 보인다. 美人松이라고 한다. 높은 산으로 올라가면 으레 키 큰 침엽수 들이 나타난다. 요세미티에는 세코이아 나무가 있는 데 이곳에는 미인송이 있다. 나의 견해로는 이곳의 지하수와 토양이 미인송이라는 아름다운 나무를 자라게 한 것 같다. 백두산이 특별한 산임을 간접적으로 입증해주는 증표이다. 신달호텔 주위에 미인송이 군락하고 있어 호텔의 인상도 좋아진다. 그러나 호텔시설은 좋지 않아 실망했다. 좋은 시설을 갖추고는 수지 맞추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자 이해가 갔다. 포도주와 산소주로 항상 동문들에게 봉사를 해오고 있는 이종범 동문의 덕분으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많은 동문들이 전보다 많은 양의 술을 즐기는 것 같았다. 모처럼 부인들과 어울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져 백두산 관광을 마련한 김종남 회장을 비롯한 1.7산악회 여러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내일 백두산 등반을 앞두고도 개의치 않고 술을 즐기는 것을 보면서 동문들의 건강이 아직도 자신감으로 차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 백두산 천지에 오르다

7월 13일 화요일 어제 과음으로 속이 거북하여 밤중에 일어나 복식호흡을 한 후에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 5시경에 잠이 깨어 6시 경에 산책을 나갔다. 호텔주위의 미인송을 유심히 보았지만 대관령과 안면도에서 본 홍송과 같은 종류의 소나무라고 나름대로 결론지었다. 이름다운 미인송의 군락지를 가까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다른 볼거리를 찾아보았다. 마을 쪽으로 가는 중에 모란꽃을 볼 수가 있었다. 미국 뉴저지에서 본 모란과 비슷하다. 모란은 기후에 따라 4월부터 7월까지도 피는 모양이다. 모란도 장미처럼 색깔과 모양이 다양하다는 것을 미국여행과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아침식사를 하고 8시 40분경에 백두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비교적 여행운이 좋았던 과거의 경험으로 오늘도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석인 기대를 안고 설레는 마음을 갈아 앉혀 보려고 심호흡을 한다. 비는 그쳤지만 개일 것 같지가 않다. 가는 중에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멈추었다. 불안감이 가중된다. 10여분 지체 후에 다시 출발했다.


장백산이라고 쓴 문 앞에 도착하여 단체기념촬영을 하고 잠시 후에 다시 차를 타고 백두산으로 향하였다. 주위에 수목 중에 흰 나무껍질의 자작나무가 눈에 띤다. 침엽수가 많아진다. 분비나무와 가문비나무가 많다는 것은 자료에서 읽어 알고 있지만 구별이 어렵다. 분비나무는 키가 보통 25m이고 가문비나무는 키가 40m 라고 한다. 분비나무가 많은 것 같다. 나무의 숲들에서 알프스산의 침엽수 군락지에서 느낄 수 있는 깔끔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없으나 추위와 바람에 시달린 앙상한 고목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지리산 등 남한의 산들과 다른 것 같다. 안개 때문에 볼 수 없었는지 모르지만...
백두산 올라가는 길의 원시림(분비나무)찝차로 갈아타는 곳에 도착하였다. 찝차에 조별로 6명씩 타고 10시15분경에 천문봉 아래에 있는 주차장을 향하여 지그재그 길을 올라간다. 안개가 오락가락한다. 안개가 걷힐 것 같다며 천지를 볼 수 있겠다는 희망 섞인 말을 주고받았다. 아래로 야생화가 핀 연초록의 산들이 보인다.
구불구불한 길에서 차들이 추월을 한다. 교통의식이 후진국임을 알 수 있다. 찝차가 전복을 해서 한국인 여자 관광객이 사망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어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10시 35분경 주차장 기상대에 도착했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천지를 볼 수도 없다는 불안감을 안고 천문봉을 향하여 걸었다. 아내의 팔을 붙들고 부추기며 정상에 도착했다.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실망과 불안감이 교차한다. 등산경험이 전혀 없는 아내를 하산하는 찝차를 타도록 안내해주고 올라오는 길에 마침 천문봉의 안개가 걷히어 동료의 도움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동료의 사진은 안개가 다시 몰려와 찍을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안개가 움직인다. 현지 안내인의 인솔로 철벽봉(2,550m)으로 하산하기 위하여 모였다.

11시 10분경에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야생화가 많이 눈에 들어온다. 디지털 카메라로 야생화를 근접촬영을 했다. 마침 야생화 전문 사진사를 만나 친절하게 꽃 이름도 알려주고 하산 길 설명도 해주어 마음이 놓여 야생화를 몇 개 더 찍었다. 그러나 렌즈에 물기가 낄 것 같아 전원을 켰다 끄는 것을 반복했다. 경사가 가팔라지면서 촬영하기가 겁이 난다. 자주색 매발톱꽃을 찍지 못했다. 높은 산을 올라본 경험이 별로 없지만 백두산의 야생화는 생명의 신비로운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작게 잘아서 작은 꽃을 피운다는 것은 하나의 작은 완성이지만, 아름다움은 작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작음으로써 강추위와 비바람 등 역경을 극복하고 완성을 이루는 생명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신비롭고 높은 뜻이 담긴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받아드리고 싶다.
오후1시 40분경에 일행모두가 평지에 앉아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반찬이 각자 가지고 오는 중에 그릇 안에서 섞이어서 짠맛뿐이다. 배가 고파서인지 그래도 꿀맛이다. 식사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해보니 가파른 경사의 철벽봉 하산 길을 택하지 않았으면 천지를 보지 못하고 돌아 갈 번했다는 생각이 들자 김종남 회장의 결단이 옳았다고 생각을 했다. 일부러 들으라고 큰 소리로 김종남 회장 칭찬을 했다. 사고만 없었다면 박수를 제의 할 수 도 있었다. 식사 후에 매점에서 파는 천지 물로 만든 커피를 김승만 왕회장이 모두에게 대접했다. 커피보다는 백두산 물을 간접적으로 나마 마셨다는 데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백두산의 특징은 무엇일까?


1970년대 후반으로 기억된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면서 “도(道)는 순환한다“는 이치를 알게 되었다. 설악산으로 직장에서 단체로 여행을 갖다. 토왕성 폭포를 보는 순간 물은 순환한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토왕성폭포는 많은 물이 아닌 적은 물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다. 토왕성 폭포는 빗물이 저장 될만한 곳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지하수가 솟아 흘러내리는 것이다. 서울공대 이충웅 교수의 글을 인용해보면,“백두산 천지에 담긴 물의 무게는 약 40억톤이며 이 물의 위치 에너지는 20조kw이다. 아주 최소한으로 보아서 30%의 물이 지하에서 솟아오른 다고 보면 12억톤이 된다. 만일 인간이 전기를 사용하여 이 12억톤의 물을 순간적으로 천지 수면의 높이인 2,155m로 끌어올린다면 약 6조kw의 전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백두산 자체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에너지가 발생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대한 기(氣)가 발생되는 산은 지구상에서 다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한반도의 기는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발생되어 각 산맥을 타고 전국으로 흐른다.“지하에서 솟는 물을 60%로 보면 12조kw의 전력이 필요하다. 지하에서 솟는 물이 바다와 연결되어있다고 가정하면 동해의 평균 수심은 1,700m이고 서해의 수심은 44m이다. 바다에서 스며드는 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끌어올리는데 소요되는 전력의 양은 더 커진다. 백두산 천지의 물은 중국의 송화강과 한국의 두만강, 압록강의 발원지가 된다. 남한의 한강, 금강, 낙동강의 발원지는 태백산맥에 있는 산들이 발원지다. 동해 바다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거대한 에너지가 백두산에서 뻗어 내려온 태백산맥 줄기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세계의 3대호수인 카스피해(370,886㎢) 5대호(240,000㎢) 바이칼호(23,000㎢,수심1,741m -제일깊음)의 물도 지하에서 솟는 물이라면 그 에너지도 엄청나게 큰 것이다.(알프스산에 있는 인터라켄의 Thun호수와 Brienz호수는 해발 567m) 결론적으로 백두산 천지는 한반도에서 작동하고 있는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후 2시경 다음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하기 전에 장백폭포로 내려가는 관광팀과 차일봉, 용문봉, 소천지로 우회하는 산행팀으로 나누었다.산행팀 16명 관광팀 29명으로 나누어져 하산을 시작했다. 나는 관광팀에 끼었다. 달문에서 장백폭포쪽으로 흘러내리는 1,250m 길이의 승사하(일명 통천하)물의 양은 별로 많아 보이지 않는다. 내려오는 중간에 용의 비늘모양으로 주름져 쌓여 있는 눈 얼음덩어리가 인상적이다. 그러나 굴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장백폭포를 보았을 때는 쏟아지는 폭포의 물의 양이 결코 적은 양이 아님을 보고 놀랐다. 승사하를 흐르는 지상의 물과 지하로 흐르는 물이 폭포에서 합류하여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다. 세 개의 물줄기로 갈라져 떨어진다. 폭포 우측 절벽에도 자주색 꽃이 피어있다. 계단에서 보는 폭포 상단의 경치가 오히려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 아름다울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려 갈수록 계단의 경사가 가파르다. 나도 한 번 미끄러졌다. 등산으로 단련이 되지 않은 부인들은 아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올라오는 분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천문봉에 올랐다가 천지를 보지 못한 분들과 장백폭포를 보려는 분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철벽봉으로 하산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려가는 코스로 올라왔을 것이다. 오히려 더 힘든 코스다. 철벽봉으로 내려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려와서 바라보는 폭포는 좌우의 거대한 바위가 V자 모양을 이루고 있어 폭포의 이미지를 아름답고 크게 만들어준다. 세 줄기의 폭포수는 하얀 비단을 내려뜨린 것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시멘트로 만든 굴 계단은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막아 줄 수 있고 현기증도 줄여줄 수 있어 훌륭한 아이디어로 아주 잘 만들어 놓았다고 칭찬을 해주고 싶다.
앞서 먼저 내려온 편에 속하여 온천욕을 적은 수의 사람들과 오붓하게 오래 할 수 있었다. 유황온천이 아니라 유황냄새는 나지 않으나 온천물이 뜨겁고 깨끗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오랫동안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겼다. 관리인도 수시로 드나들며 수온도 체크하고 고객의 말을 경청하여 서비스도 만점이었다고 생각했다. 어제의 토론에서 물이 불결할 것이라는 짐작은 기우에 불과했음이 판명되었다. 산행팀이 도착하여 목욕을 끝낼 때까지 많은 시간의 여유가 있어 버스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안개 속에 산행으로 고생을 했을 동료들을 악수로 환영해주었다. 산행경험이 적은 동료들의 고생담을 들으며 한 바탕 웃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저녁식사 시간이 오후 8시가 다 되어 시작되었으나 가져간 포도주와 소주를 다 소비해야 하므로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마음껏 술을 마셨다. 다행인 것은 술에 취해서 행동이 부자유스러운 동료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우리 대원들의 건강이나 지적 수준이 아주 높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존경과 긍지와 자랑이 어울려 뿌듯한 마음으로 숙소로 향하였다.


3. 도문 국경선에서 북한 마을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7월 14일 수요일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 걸어가는 방향으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빛난다. 오늘 백두산을 오르면 천지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았을 터인데 아쉽다. 미인송 군락지에서 뿜어 나오는 신선한 공기를 마셔보려고 들어 갈 수 있는 곳을 찾았으나 철책으로 만든 울타리에 열린 곳이 없다. 아침식사를 하고 오늘의 목적지 도문을 향하여 출발했다. 연길에 도착하는 날 우리가 탄 버스가 불결하여 약간 실망을 했다. 의자의 머리부분 흰색천의 카바는 누렇게 때가 끼어 있었고 내가 앉은 의자에는 커피를 엎질렀는지 얼룩이 져 있었다. 혹시 다음날에는 머리 카바를 바꾸어 주겠지 기대를 했으나 여행 끝날 때까지 그대로다. 비가 와서 먼지로 얼룩진 유리창도 닦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운전수가 중국인이므로 가이드에게 닦으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유리창을 닦았다. 그러나 마무리를 하지 않아 유리창의 얼룩은 그대로다. 우리나라 70년대의 관광버스는 그래도 깨끗하게 청소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중국인의 게으름과 어느 정도의 불결은 그대로 방치하는 습관은 서비스 경쟁시대에 분명 뒤지는 행동이다. 중국의 어두운 면이 보인다. 식당에서도 접시에 음식 때가 있는 것이 있었다.

중간 휴게소에서 양봉 꿀을 시식하고 부인들께서 사기도 했다. “묘향산 력사 전시관”에 정차하여 북한 측 외화 벌이 대표자로부터 우황청심원과 상황버섯에 대하여 장황한 설명을 들었다. 공무원 냄새가 풍기고 여자 직원들은 경직된 표정이 역역하다. 건방진 말투에 역겨운 감정이 들었으나 집사람이 우황청심원을 샀다. 휴게소에서 물건을 사면 현지가이드에게 매상액의 일정 비율의 금액을 주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는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남자들은 물건을 사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분 들은 마음이 약해서인지 사준다. 지금까지의 여행경험에 비추어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지 않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한다. 물건 값도 비싸거나 양질의 품질이 아닐 확률이 높다. 그러나 도와준다는 생각이라면 사도 무방할 것이다. 연길이 가까워지면서 야산과 평야가 어우러진 대평원이 전개된다. 산을 밭으로 개간하여 농작물을 심은 것이 특색이다. 앞으로 기계영농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서부의 대평원과 비교가 된다. 한국의 농업이 중국농산물 수입으로 위축될 것이 명약관하하다.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을 할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정권 때 농림부장관을 지낸 J씨가 흑룡강성의 유휴농지에 거금을 투자했다가 실패한 예를 융자를 해주었던 시중은행친구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만약 그분이 미국의 대평원의 영농상황을 보았다면 투자를 안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농업분야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 뻔하다. 한국농업의 장래가 걱정된다. 거의 똑같은 음식을 연속해서 먹다보니 입맛에 맞는 음식이 먹고 싶은 것은 여행객의 인지상정이다. 2호차 산행팀은 남한의 별미를 아마 골고루 맞보아 음식에 관한한 일가견을 다 갖고 있다. 아이디어가 발동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불란서요리(멍멍탕)를 먹기로 1호차로 연락이 왔다. 거의 모든 남자들이 좋아했다. 연길시내에도 그 음식을 파는 거리가 따로 있다. 오기 전에도 영양보충을 위해 단체로 기차를 타고 가서 먹었지만, 이곳 음식의 맛은 약간 다르다. 그러나 역시 굿 아이디어였고 모두들 흡족해 하는 것 같다. 여행사에서 지불하는 금액을 초과한 부분은 임한석 동문이 지불했다. 모두들 박수로 답례를 했다. 남자들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영양보충을 해서 미안하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 도문(圖們)을 향하여 출발했다. 건설한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도로표지판도 잘되어있고 주위의 산과 나무는 한국과 별 차이가 없다. 중간 톨게이트에서 승용차로 마중 나온 이건산업 직원을 만나 앞장서 달리며 안내를 해주는 치밀한 접대에 다시 박영주 동문에 대한 끈끈한 정을 느꼈다.

따가운 햇볕 속에 북한과의 접경지대 중국도문구안(口岸) 문 위로 옆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 문 위에서 북한 남양시의 모습과 도문다리를 관람했다. 나로서는 생전 처음 북한의 모습을 근거리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도문에는 현대식 호텔건물을 비롯하여 깨끗한 2~3층 건물들이 있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북한의 건물들은 초라해 보인다.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서 다인승 승용차와 소형트럭이 보이고 사람은 한 사람정도 보인다. 적막의 마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현지가이드 말로는 전에는 건물이 별로 없었으나 최근에 주택을 새로 지어서 저 정도라고 한다. 내려와 도문다리 경계선에서 사진을 찍었다. 두만강 폭은 남한의 개천의 폭보다도 작아 보인다. 노 젓는 배사공은 볼 수도 없다. 북쪽으로 중국 측에서 만들어 놓은 강선착장이 보인다. 이건산업의 도문 현지법인 沿邊利建木制品有限公司 시찰이 시작되었다. "환영 서울대 상대 17산우회 연변, 백두산 방문"이란 커다란 현수막이 우리일행을 반갑게 맞아준다. 김승만 회장이 벽시계를 현지책임자에게 전달하고 브리핑을 들었다. 중국산 원목의 구입이 용이하고 철도가 공장까지 연결이 되며, 인건비도 저렴하여 도문에 공장을 1997년 9월에 건설하였으나 그 해에 외환위기를 맞아 어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교통이 편리한 대련(大連)시에 분공장을 설립하여 중국에 2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은 3명이고 종업원은 360명, 주요 제품은 Birch(자작나무)마루제품, 마루합판, Birch/Oak무늬목을 생산하여 한국과 일본에 수출한다고 한다. 공장견학에 들어갔다. 나무야적장에 계속 물을 뿜어준다. 지하수가 풍부한 모양이다. 나무도 이제는 원목을 그대로 사용하기보다는 아름답고 더 단단하게 가공하여 실용적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시대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솔로몬 군도에서 원목재배 성공 신화를 만들어낸 박영주 회장의 탁월한 경영능력이 이곳에서도 발휘되는 것 같아 동문으로서 기쁜 마음을 간직한 채 공장을 나왔다. 연길시내 만찬장에서 한국인 책임자들을 다시 만나기로 예약이 되어 있어 간단한 인사를 하고 두만강변을 따라 북한지역을 살펴보기 위하여 버스에 올랐다. 왼쪽과 건너편으로 산에 화전으로 조성된 밭들이 보인다. 산에 나무가 없어 비가 오면 작물이 비에 쓸려 내린다고 한다. 식량난에 쪼들리는 북한의 실상이 확연히 들어난다. 밭에 사람이 보인다. 산 위쪽의 밭은 누런색이다. 집단농장의 비효율적인 면이 그대로 들어난다. 연길시내에 있는, 시설이 호화로운 중국 벽산호텔 연회장에서 만찬이 시작되었다. 식사도중에 김종남 회장이 박영주 회장에게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바쁜 일 때문에 참석치 못해 미안하며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말과 일류호텔 연회장에서 저녁을 대접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박영주 회장과 김종남 회장과의 개인적인 친분에다가 박 회장의 동문들을 위한 충정과 배려로 대부대 46명이 최고급요리로 대접을 받게 되어 감사한 마음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대원들은 박영주 회장과 김종남 회장에게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음식은 처음 먹어보는 독특한 중국음식의 혼합이었다. 도수가 높은 중국술이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이곳 맥주 중에 최고인 청도 맥주도 맛이 독특하여 많은 동문들이 즐겨 마셨다. 포식을 한 후에 중국의 여행상품 발 맛사지까지 박 회장 회사에서 서비스를 했다. 그야말로 풀코스 접대를 받은 것이다. 백두산 산행으로 지친 발과 다리의 피로가 풀리어 잠을 잘 잘 수 가 있었다. 대우호텔은 시설이 일류다. 위성안테나를 설치하여 한국의 3대 방송 모두를 시청할 수가 있었다. 앞으로 위성안테나 장비가 염가가 되어 많은 조선족들이 설치를 하면 이곳의 문화가 빠른 속도로 한국의 영향권으로 편입될 것이다. 지리적인 국경을 방송통신이 허물어 버릴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물질문명과 문화가 동시에 발달하고 발전하는 나라가 경쟁의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한국의 가수, 영화배우, 드라마, 영화 등이 아시아에서 한류열풍을 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7월 15일 목요일 연길시의 재래시장과 백화점들을 둘러보았다. 한국의 7~80년대의 수준인 것 같다. 백화점 화장실에서 돈을 받는 것이 특색이다. 귀금속 등 여성용품 백화점에서는 화장실이 무료다. 가이드가 곰 사육장에 들린다고 한다. 별 거부반응이 없었다. 많은 수의 곰을 사육하는 것이 신기해 보이도 하다. 이곳에만 가능한 상품인 것 같다. 역시 웅담판매가 시작되었다. 가이드는 보증을 한다고 한다. 보증을 이곳에서는 담보라는 말을 써서 첫날 한 바탕 웃은 적이 있다. 여자분 여러 명이 역시 웅담을 샀다. 내가 웅담 먹어본 경험담을 말한 것이 촉매역할을 한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기행문을 읽어보니 공항에서는 이곳보다 싸게 판다고 한다. 술도 공항에서는 시내보다 훨씬 싸게 판다고 한다. 후진국에서 물건 살 때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비행기에서 연길에서 초등학교를 다닌다는 학생들을 만났다. 방학이라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외환위기이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에 빠져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이 1929년 대공황 이후에 많은 국민들이 한동안 패배의식에 빠졌다는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중국에서 중국어를 배우기 위한 목적으로 초등학교를 이곳에서 교육시킨다는 것은 패배의식 이다. 교육은 수준과 분위기가 아주 중요한데 연길이 한국보다 좋을 리가 없다. 하나를 얻기 위하여 아홉을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기업을 좋게 보아 투자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완전히 외국에 점령되었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오로지 부동산 투자에만 매달린다.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경제의 장래는 밝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소비가 위축되는 것도 패배의식에서 오는 비관적인 미래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백두산 여행준비를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 수고 해주시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사진을 많이 찍어 동문들에게 봉사를 한 구명회 동문은 정말 썬 파워라고 생각한다. 벽산호텔 만찬장에서 찍은 부부사진은 걸작품이 많다. 구명회 동문은 약방의 감초처럼 동문들을 위하여 다방면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구 동문이 추진하는 일은 동문들이 무조건 신뢰를 하고 따르는 경지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이영구 동문도 고급 디지탈 카메라로 많은 사진을 찍어 동문들에게 봉사를 한다. 골프회 회장이므로 총무인 내가 칭찬을 하면 아부라고 할 까봐 여기에서 그친다.
그리고 산행에서 항상 후미를 책임지며 궂은 일을 도맡아 동료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아온 김종남 회장의 디카실력도 대단하여 다운을 받아 내사진실에 보관했다.
끝으로 이번 백두산 여행을 주관한 김종남 회장과 구명회 총무에게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리며 기행문을 마친다.


< 제공 한영구(17기)동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