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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산행기 21(큰재-윗왕실)-2005년을 보내며...(1·7산악회)  

2005년을 보내며...라니! 언제 2005년이 있었던가 싶다. 백두대간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 2004년 12월 11일. 꼭 1년 만에 우리는 대간의 3분의 1을 주파했다. 전남 구례, 경남 산청, 함양을 거쳐 전북 무주, 충북 영동을 지나고, 다시 경북 김천을 밟고 추풍령을 넘어 상주까지 왔다. 도계를 넘나들며 수많은 봉우리와 고개를 내 발로 밟았다. 국토사랑을 몸으로 확인하며 산천의 아름다움에 가슴 설렜고 사람 사는 동네의 정겨움에 마음이 따뜻했다. 때론 훼손의 현장에 절망하고 분노했으며, 육체적 고통이 우리를 탄식케 한 적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또한 기쁨이었기에 우리의 발길은 지칠 줄 몰랐다. 고락을 같이하며 나눈 회원들간의 끈끈한 정은 이제 우정을 넘어 가족애의 수준에 이르렀다.
오늘은 2005년 납회 산행일 뿐 아니라 17산우회가 101번째 산행을 하는 뜻 깊은 날이기도 하다. 2001년 9월에 시작한 산우회가 어느덧 4년이란 연륜을 쌓으며 100회 산행을 기록한 것이다. 집행부의 헌신적인 봉사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회장님은 장기집권을 우려하지만 '집권'이 아니라 '봉사'에 무슨 임기가 있나. 말로만 칭송할 게 아니라 최소한 내년부터는 회장님한테 회비라도 면제해 드리도록 하자. 회비 내고 안내하는 가이드 봤나.
참석인원이 10명으로 저조하자 "최정예 부대", "진짜 전문산악인"만 모였다고 자화자찬이 요란하다. 진짜 반가운 손님은 김숭자 여사. 한동안 산행을 못할 거라는 장 변호사님의 말씀에 내년에나 뵐 줄 알았는데 훨씬 더 젊고 예뻐진 모습으로 한달 만에 불쑥 나타나셨다. 괜찮으냐는 인사말에 "별로 안 괜찮은데 그냥 와버렸어요"한다. 집안에 갇혀있으니 산에 가고싶어 못 살겠더란다.
그런데 회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김여사가 은밀히 허리 사이즈를 묻는다. 여자동창이 남자동창 허리 사이즈를 묻다니... 잠시 후 허리 사이즈에 맞춰 남자 동창들한테 돌아온 것은 이름도 요상한(Silver Tech?) 팬티!!! 였다.('불량무기' 김영길 동문은 이걸 "실버텍스"로 誤讀) 서울상대 17회 졸업생 중 김숭자동문한테 팬티 선물 못 받은 사람은 이제 "진짜 불출"이다. 그나저나 여자동창한테 팬티 선물 받아 귀가한 남학생들 집에 가서 모두들 무사했는지 모르겠다. 2회 연속 재데뷔 선물 받고 모두 싱글벙글인데 누군가 "이제 한동안 쉬었다 나오려면 적금이라도 들어놓고 쉬어야겠다"고 탄식.
또 한분 반가운 손님은 명예회원 장문영 부회장. 말이 명예회원이지 수시로 카페에 드나들며 꼬릿말도 자주 다신다. 내년부터 산우회에서 정회원 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지리산 종주의 감동이 워낙 커 백두대간에도 늘 합류하고 싶으셨다는데 빠진 구간 보충수업 있으니 지금부터 열심히 동참하면 완주하실 수 있습니다. 지리산종주 때 찍은 운해를 배경으로 한 사진을 인화해 나눠주셔서 잠시 그때의 감격에 다시 한번 젖었다.
고속도로 구간에서 흩날리던 눈발이 추풍령으로 들어서자 말끔히 그치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오늘도 날씨는 산행에 최적이다. 회장님이 오늘 구간은 이름 붙은 산, 봉, 고지가 하나도 없는 야산구간이지만 길이 헷갈리기 쉬우니 구 총무의 안내를 잘 받으라 한다. 큰재에서 시작, 회룡재, 개터재를 거쳐 윗왕실까지 4시간 20분 예상.
10시 큰재에서 출발하려는데 아침부터 복통이 난 남편이 자기는 버스에 남겠다고 폭탄선언을 한다. 그러나 기념사진이라도 찍으라는 성화에 버스에서 내려온 남편은 결국 회유, 공갈, 협박에 못이겨 다시 배낭을 메고 산행에 나서게 되었다. 코스는 시종 마을과 목장 옆을 지나며 숨 한번 찰 일 없고 땀 한번 흘릴 일 없이 이어진다. 이거야 정말 거저먹기다. 또 백두대간의 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야산구간이 앞으로 두 번밖에 안 남았다니 오호 애재라!
백두대간 위에 있는 유일한 학교인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에서 대간로에 진입한다. 안타깝게도 학교는 폐교가 되었고 주위에 폐가로 남아 있는 사택 몇 채가 쓸쓸함을 더한다. 낮은 능선을 하나 넘으니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이영도목장의 진입로인 이 포장길을 따라 가다 목장 정문 바로 앞에서 다시 리본이 달린 대간길로 들어선다. 목장은 한동안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다시 완만한 능선을 넘어 회룡재. 농로로 쓰이는 고개다. 회룡재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개터재가 있는데 역시 마을 사람들이 농로로 사용하는 고개다. 12시 20분, 오늘 코스 중 가장 고도가 높은 지점인 505m고지 근처에서 점심을 먹는다.
김여사가 가져온 따끈한 된장국과 커피까지 곁들여 샌드위치를 잘 먹은 남편이 점심식사 후 복통이 심해져 계속 후미로 쳐졌다. 몇 차례나 볼일을 보러 간 남편을 추위 속에 기다리며 끝까지 에스코트해 준 회장님께 감사드린다.
점심 후 얼마 안돼 구 총무에게서 벌써 하산지점인 윗왕실에 도착했다는 무전연락이 온다. 3시간도 안 걸렸으니 정말 대단하다. 대단한 사람은 또 있다. 계속 중간 선두를 지킨 김숭자여사. 김여사는 눈 수술한 게 아니라 다리 보강 수술했냐는 소리를 들었다.
2시 20분, 전원 하산해 윗왕실 에코브리지 위에서 기념촬영하고 효곡리로 내려왔다. 근처에 목욕할만한 곳이 없어 다시 직지사 앞 파크호텔로 갔다. 네 번째 가니 오늘은 목욕값 더 깎아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지난번 산행 때 대구식당 올 때마다 내가 산다고 큰소리쳤던 구 총무 큰일났다. 대구식당 올 일이 다시 없을 줄 알았는데 또 왔으니 어쩌냐. 그런데 저녁은 오늘 복통으로 회원들의 심기를 불편케 한 남편이 샀다. 버스 안에서 온갖 비상약으로 응급처치해 주더니 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가 죽부터 주문한 김숭자여사에 대한 눈물겨운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했다. 장 변호사님은 마나님 재데뷔를 축하한다고 포도주를 두 병 갖고 오셔서 비주류파들을 행복하게 해주셨다.
5시 30분, 현출발 없어도 알아서 잘 일어난다. 출발담당 직책이 없어질 위기에 몰렸는데 현출발께서는 지금 태국이나 가실 때입니까.
아마도 산우회 역사상 처음으로 '2차' 없는 산행이 아니었던가 싶다. 김영길 동문이 "다들 식성이 바뀌어 멀미약 안 먹어도 멀미 안 하는 모양"이라고 투덜댄다. 7시 30분, 천안 삼거리 휴게소에서 임종수 동문이 아이스케키를 샀다. 아이스케키 물고 "고요하고 거룩하게" 2005년 납회 산행을 마쳤다.
동문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오. 그리고 백두대간도 같이 갑시다.
참가자(10명) : 구명회, 김숭자부부, 김영길부부, 김종남, 박정수부부, 임종수, 장문영. (노순옥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