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自由揭示板 中에서

상대69학번,그 다정한 벗들에게,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어머님을 떠나보내드린 슬픔으로 가슴이 무너지고 있을 때, 자네들은 모두들 몰려와 나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씀을 주셨지.
서울상대 참 좋은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가장 힘든 고통의 시간에 다정한 벗들의 위로는 얼마나 큰 격려가 되었는지..
모두들 고맙네. 아직도 슬픔은 파도처럼 계속 밀려오고 있으나, 나는 탈진한 힘을 모아 나의 다정한 69동지들에게 감사의 메세지를 전해야만 하네.
자주보지도 못했던 벗들까지, 비오는 밤 늦게까지 빈소를 찾아준 그 수많은 발길들, 분망하여 조문을 못한다며 보내주신 위로의 전문들... 오래오래 내 마음속에 간직 하겠네.
세상의 어느 자식도 어머니와 헤어지는 슬픔은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이나, 막상 당한 그 지독한 아픔은 당한자만이 알 수 있을 것 일터...
아직 생존해 계시는 어머님들을 가지신 벗들을 위하여 나의 사모곡을 적어볼까하네. 떠나신 후 땅을 치며 회한에 젖은들 다 부질없는 미몽이므로 살아 계실 때 팔다리 한번 더 주물러드리는 것이 구제 받는 길이라고 다 아는 얘기를 다시 주장하려고 하는 그 통한을 이해하여 들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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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님의 시간은 2004년 4월 26일에 돌연히 정지되었다.생과 사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고통이나 두려움의 절차도 없이 어머님은 홀연히 이승의 인연을 끊어버리셨다. 오감과 유한의 시간으로부터, 영과 무한의 시간 속으로 존재를 옮기신 것이다.
그 모습 뵙고, 그 음성 듣고, 그 얼굴에 내 얼굴을 예전처럼 부비고 싶으나, 이제는 오감의 세계가 끝났으므로 다만 우리는 영속에서만 교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분의 육신이 대지에 내려질 때 나는 이제 영겁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탄생이전의 영겁과 죽음이후의 영겁사이에 찰나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의 부싯돌.. 이제 어머님의 섬광은 끝나고 다시 영겁의 세월이 흐를 것이었다.
나의 어머님의 일생은 세개의 축으로 이끌어져 왔다. 기도, 불굴의 의지, 베품.
나의 기억이 시작되는 때로부터 그분은 늘 천지신령과 부처님께 기도하는 모습으로 계셨다.
딸 넷을 두시고 아들하나를 얻기 위한 필사적인 기도얘기는 하나의 신화다.
내 어린시절 내 손을 잡고 삭풍이 몰아치는 들판에 나가 얼음을 깨어 냉수로 몸을 씻고는 하늘 우르러 기원하기를 이 귀한 자식을 돌보소서.. 머리카락에 주렁주렁한 고드름에 나는 질려 있곤 했다.
기도는 그분이 여행을 하실 때에도 단 하루의 예외가 인정되지 않았으며 89세의 연세로 매일 새벽 4시부터의 두시간, 오전 10시부터의 두시간은 한치의 착오도 없이 기도에 바쳐졌다.
그 분은 기도는 그분의 목숨이라고 줄곧 말씀하셨다.
그분의 둘째 본질은 무서운 의지이다. 그분이 일단 작정하면 산허리는 밭이 되었고, 자갈밭은 조만간 논이 되고 말았다. 한다고 결심하면 무엇도 방해가 되지 못했다.
목표를 정하고 무섭게 관철시키는 그분의 의지는 가히 불굴이었으며 많은 분들이 그분이 남자로 태어났다면 일세의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셋째 그분의 삶은 베품의 과정이었다.
배고프던 시절 그분은 가난에 찌든 여러 이웃들에게 양식을 보시했으며, 줄곧 강조하시기를 만일 너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끌어안고 있지 말고 항상 부족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계륵이, 저들에게는 죽고 사는 양식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내 어머님은 나에게 가장 위대한 스승이셨고 가장 정확한 자문역이셨다. 이제 그분은 내 마음속에 화상 같은 슬픔의 자국을 남기고 영겁의 세계로 사라지셨다.
나는 정말 그분이 5년은 더 계실 것이라고 확신했었고 그래서 그 분께 효도할 수 있는 시간은 많이 남아 있다고 방심했다. 그 방심은 지금 천추의 회한이 되어 나를 숨쉬기 조차 어렵게 하고 있다.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는 말을 어찌 귀담아 듣지 아니하였는지... 80이 넘으신 어머니들에게 내일은 없다. 나는 이 진리를 어머님을 잃고야 통절히 깨달았으나 그때는 모든 것이 지나갔으며 부질없는 미련만 되풀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아직 어머니가 생존해계신 벗들에게 이 깨달음을 계속 전도하려고 한다.
내 나이 56세, 이미 자식이 성가할 때에 이르렀으나 어머님 잃은 비통함은 끝이 없다. 서러움은 가슴바닥에서 파도처럼 밀려와 부서지고 또다시 밀려와 내 존재를 뿌리채 흔든다. 그분의 공간은 너무 커서 그 분이 빠져나간 자리에 무엇이 채워질 것인지 엄두도 나지않는다.
나는 다만 한없이 가슴시려워 하며 다음 세계에서도 꼭 어머님과 모자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고 기원하고 있을 뿐이다.
강렬한 섬광을 남기고 영겁의 시간으로 회귀하신 어머님. 모든 어머님들이 그 길을 가실 것이다.
< 제공 이종기(27기)동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