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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회 여수-거문도-백도 여행

58회는 지난 2003년 봄 일기불순으로 두차례나 연기하여 왔던 국토역사유적지 여수-거문도-백도 탐사여행을 지난 3월 12일(금)-13일(토) 이틀에 걸쳐 다녀왔습니다.
거문도-지금으로부터 150여년전 조선왕조말엽 태평양을 향하여 남진정책을 추구하던 러시아의 푸치아틴함대가 중간 기지의 적지로 판단하고 1854년과 1857년 두차례에 걸쳐 잠시나마 닻을 내렸던 곳이요 러시아세력의 남하를 막으려는 영국이 한반도 해역에서 러시아함대의 진로를 차단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점을 찍었던 곳. 이렇게 해서 천혜의 해군기지로 부각되었던 요새가 바로 거문도입니다.

마침내 1885년 4월 15일 영국의 드웰함대가 러시아에 앞서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거하기에 이르렀고 여기에 당시 조선왕조의 종주국임을 자처하던 청나라가 중재국으로 개입함으로써 거문도사건은 국제적 분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대륙진출을 꿈꾸며 청과 대립하던 일본은 오래전부터 거문도에 일본인을 불법 이주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일본은 갑신정변(1884)에서 김옥균과 박영효 등 개화파를 지원하다 실패하자 이들을 군함에 태우고 거문도에 일시 기항한 후 두사람을 일본에 피신 시킴으로써 거문도해역은 동북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이 충돌하는 십자로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영국해군의 거문도불법 점거사건을 해결하기위한 조선왕조의 노력은 미국, 독일, 일본정부에 대한 중재요청 등 눈물겨운 바가 있었지만 힘이 받쳐주지 못하는 외교적 노력은 결국 열강의 힘의 논리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국해군은 마침내 1887년 2월 27일 거문도기지에서 철수함으로써 거문도 불법점거사건은 일단 마무리되었지만 이때는 이미 조선왕조의 운명이 열강의 틈새에서 바람 앞의 촛불처럼 가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현대사의 고통과 실패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그 속도를 더해가던 때이었습니다. 학계에서는 당시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열강의 대립구도와 현재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립 구도간에 유사점이 적지않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58회의 이번 여수-거문도-백도여행은 다도해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둘러보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우리 현대사의 고통과 실패가 아픈 상처로 남아있는 현장을 직접 답사하면서 지난날의 실패를 돌아보고 아직도 현대사의 질곡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현실을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금년 봄철 여행은 퍽 뜻 깊은 여행이 될 수 있었습니다. 58회가 여수-거문도-백도를 찾았던 그날은 환상적일 정도로 맑고 온화하였던 날씨덕택에 여행에 나섰던 38명의 회원들은 남쪽 다도해국립공원 쪽빛 바다에 떠있는 백도의 칼날 같은 흰 절벽, 거문도 등대 및 여수 돌산도 향일암의 앞바다에 펼쳐진 풍광을 감상하면서 잠시 세속의 풍진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 제공 문학모(16기)동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