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총동창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참여마당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2026년7월25일 [權泰鳴칼럼] 美國歷史의 故鄕 Virginia를 찾아가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풍장시 작성일26-07-25 16:00 조회39회 댓글0건

본문


2026725[權泰鳴칼럼]美國歷史故鄕Virginia를 찾아가다


Chesapeake Bay Bridge.jpg

 

남루한 차림새의白人너댓명이Chesapeake으로 흘러드는 개천을 따라 밀림속을 조심스럽게 정찰하면서 상류로 올라갔다. Susan Constant, Godspeed, Discovery등 세척의帆船에 나누어 타고英國London을 떠난지5개월여의 힘든 항해 끝에 지금의Virginia남쪽Chesapeake에 닻을 내린143명의 남자들. 39명의船員104명의男子들로 구성된 이들이歷史上 最初新大陸定着에 성공한英國사람들이었다. 1607514. 1606Christmas즈음LondonVirginia會社가 보낸 이들은Chesapeake에 도착하자 그곳이 정착할 만한 곳이 될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너댓명의先發隊를 파견,주위를 살펴보게 했다.정찰을 마친 뒤 일단 안전하다고 판단한 그들은옆 작은섬 한곳에 짐을 내리고 사람키 높이의 두배나 되는木柵을 두른 뒤敎會건물을 중심으로10여채의 통나무집을 짓고定着에 들어갔다.그들은 나중에 이을 당시英國國王이던James1의 이름을 따James이라 하고 마을이름을Jamestown이라고命名했다.오늘날의VirginiaWilliamsburg西南4km지점에 옛 마을이再現되어있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가는 곳이 되었다.우리가족이 간 시간이 아침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敎師父母와 함께 한 초중학생들이 특히 많았고現場은 오는2007년의移民400周年기념행사를 위한 대형건물신축과 주변환경 정비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Plymouth-Massachusetts-Mayflower.jpg

 

Massasoit.jpg

 

이들 첫移民者들은 도착한 해 첫겨울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반이상이 사망했고 처참한 생활로 서로간에 싸움이 잦아지는 등存立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이때 젊은船長John Smith의 지도력으로 다시 뭉치게 되고 여기에 그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PocahontasIndian의 호의적인 도움으로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다. 2년뒤인1609英國에서 팔려 온10여명의處女들을 맞아 비로소男子들만 있어 살벌하던 마을에 훈기가 돌기 시작했다.當時帆船을 재현한3척의 배가 마을앞 바다에 한가롭게 떠있고 어린 학생들이 흥미롭게 내부를 돌아보기도 하고 인솔교사의 설명을 진지하게 들으며 현장학습에 열중하고 있다.떡갈나무와 참나무로 우거진 주변숲이 청명한初夏의 아침 햇살에 푸른 물이 떨어질 듯한 느낌이다.宗敎의 자유를 찾아巡禮者(Pilgrims)들이 지금의Boston남쪽Plymouth에 닻을 내린 것은 그로부터13년 뒤인16201221일이다.이들의 도착을 기념하기 위해 뒷날 만든“1620”이란 숫자가 새겨진 작은 바위를 보호하고 있는 건축물과 그들이 타고 온Mayflower가 지금도大西洋앞바다에 떠있다.이때 온移民者는 모두102.이들도 도착1년 후에는 건강한 사람이6-7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극한상황을 맞았으나 끈질긴 노력과 그곳의WampanoagIndian추장 마사소이트(Massasoit)의 도움으로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다.到着이듬해인162111월에는 그들이 수확한 옥수수와 야생칠면조,그리고Indian들이 가지고 온 사슴5마리로3일 동안 인디언들과 함께秋收感謝祝祭를 지냈다.이것이美國 秋收感謝節(11월 제4목요일)起源이다.


King Charles I.jpg

    (King Charles I)


Charles Cornwallis.png

   (General Cornwallis)


Rochambeau.jpg

   (General Rochambeau)

 

이어1629년 당시英國國王Charles1로부터 지금의Massachusetts일원의 통치권한을 위임받은 일단의淸敎徒들이 보스턴 남쪽의Charlestown에 도착,미리 정착한移住者Pilgrims들과 자연스럽게 섞이면서白人들의新大陸支配가 본격적인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오늘날美國支配그룹인WASP(White Anglo-Saxon Presbyterian)가 이들의後孫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Jamestown에서 울창한 수목길인Colonial Parkway를 따라20km를 동쪽으로 가면美國獨立戰爭의 마지막大會戰場Yorktown에 이른다.하늘을 가리는 길옆 울창한 수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른 아침의 청량한 공기가 가슴을 시리게 한다.植民地軍 勝戰日17811019.數日前만해도 승리를 장담하던Charles Cornwallis英國軍司令官George Washington植民地軍司令官FranceRochambeau將軍이 이끄는美佛聯合軍에게 완패하고 만다.오만하고 전장에서도 사치를 즐기던CornwallisWashington司令官의 특별배려로 항복후에도 말을 타고 떠나는 배려를 받았지만John Trumbull이 그린 그림에는Cornwallis는 물론 그의 말마저 힘없이 고개를 옆으로 떨구고 떠나고 있다.


Appomattox Court House.jpg

   (Appomattox Court House)


이 마지막獨立戰爭大會戰勝리는France의 지원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Yorktown전쟁터에는 당시의France軍陣地와 그들의戰死者共同墓地가 지금도 잘 보존 관리되고 있다.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었을 넓은 전쟁터도 지금은 노란 민들레를 비롯한 갖가지 꽃과 파란풀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면서 한가로운 관광객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해 주고 있다.四方에 남아있는當時大砲와 지금은 얕은 구릉이 되어버린當時陣地외에 별다른 유적이 없는 곳이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전쟁터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서곤 한다.피로 물들었을 전쟁터도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그 빛이 바래지고 마는구나 싶어 여행자의 마음도 괜히 덧없게 느껴졌다.마침 혼자 보다 돌아서는 한白人男子에게 여기가獨立戰爭決戰場이냐고 묻자,當時의 싸우던 모습과大砲쏘는 방법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전쟁터 인근에 서있는勝戰紀念塔에 이렇게 씌어있다.One Country, One Constitution, One Future. Virginia남쪽 작은 마을Appomattox Court House美國南北戰爭終戰協定을 체결한 곳이다. 186549,개인저택이던 마을의 맥클린 하우스(Mclean House)에서勝者北軍Grant將軍과 가진90분간의 회담에서 항복문서에 서명을 마친Lee南軍司令官Grant6將軍과 함께 밖으로 나와 도열해 있던北軍에게 거수경례를 한 후 말없이 말을 타고 지금의Allington國立墓地가 된 그의農場으로 돌아갔다.

   

General Grant $50.jpg

 (General Grank)

  

General Lee.jpg

 (General Lee)

George Washington.png

   (George Washington)

Washington.jpg


이로부터 사흘 뒤南軍北部聯合軍에게 완전히 항복하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다.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로 약속할 경우 남 군의 말과 무기를 모두 돌려주겠다는 그랜트장군의 제의에 리장군은 굶주린 남 군 병사들에게 식량제공을 요청,서로 수락함으로써 회담이 쉽게 끝났다고 전해진다.전쟁터에서 싸운 병사들에게는 이 날이 하나의 끝이었지만美國으로서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날이었다.전쟁을 끝내면서Grant將軍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제 전쟁은 끝났다.우리는 다시 한 국민이 되었다.當時 南北美間의 이해관계와 상호간의 적개심등의 측면에서 보아終戰會談의 이같은 신속한 결착은 일반적인戰爭歷史측면에서 예상밖의 일로 평가되고 있다.지금도美國南部에는南北戰爭當時南軍旗를 집앞에 내 걸어놓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이는南部 美國人들이 지금도南部人의 자존심과 향수를 완전이 버리지 않고 있는 한斷面이라고 한다. Appomattox의 박물관에는勝者Grant將軍대신敗將Lee將軍의 유품으로 거의 채워져 있는데 이는Lee將軍에 대한南部人의 애정과 존경심 때문이기도 하지만北部에 대한南部人의 끈질긴 저항심리의 표출로도 해석되고 있다.國立歷史公園으로 지정되어 있는Appomattox Court HouseWashington D.C,에서 서남쪽으로290km떨어진 곳에 있는 집이라야 고작10여채에 불과한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갔던 날이平日이라서인지10여명의 관광객만이 넓은公園을 산책하듯 여기저기를 한가롭게 기웃거리고 있었다.

 

George Washington House, Mount Vernon.jpg

 George Washington House, Mount Vernon.jpg

 (Washington's House, Mount Vernon)


Monticello Jefferson House.jpg


Washington D.C.남쪽25km떨어진 곳에 위치한Mount Vernon美國初代大統領George Washington의 개인 저택이다.지금도聯邦이나地方政府로부터의 보조없이 관광객들이 내는入場料와 개인기부금만으로 운영되지만 유지 보수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案內人이 설명했다.본래의 소유였던 이 집에 세 살 때 이사와,大統領退任後이곳에서 생을 마친Washington의 이 저택은 세번 증축된 건물로 유유히 흐르는Potomac이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높은 구릉위에 서있는 그리 크지않은 아름다운 집이다.본채 주변으로 노예들이 기거하던 건물과 조리실,각종도구보관 건물 등 부속건물들이 배치되어 있고 본채안에는 생존시절Washington이 사용했던 여러가지 물건과 천여권에 이르는古書가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Washington이 죽기14년 전인1785년에 심었다는 정원 옆 아름드리 떡갈나무가 멀리 서 찾아간旅行者의 마음을 잠시나마 그 시대로 돌아가는 느낌을 갖게 했다. Washington D.C.에서 남쪽으로200km떨어진Charlottesville근교의Little Mountain이란 그리 높지 않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MonticelloThomas Jefferson의 개인 저택이다. Jefferson이 손수 설계했다는 이 건물은 집주인의 반짝이는 지혜가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집이다. Jefferson은 알려진 대로政治家이면서文筆家였고科學者이며設計家이기도 했다.그가 설립한名門Virginia大學건물도 자신이 설계한作品이다.중앙의Rotunda를 중심으로 좌우가 정확한 대칭을 이루고 있는Monticello는 양쪽으로 여는 문을 한쪽만 열면 다른 쪽이 자동으로 열리게 되는 자동문과 냉장고 역할을 하는 건물지하관통터널,採光을 위한 지붕유리창,공간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침대배치 등 기발한 설계들이 집 구석구석에서 발견된다.이밖에400여점에 달하는 그의 각종유품과1600여권의 장서,그리고 많은 그림들도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그의 이 저택은 현재美國에서建物로는 유일하게UNESCO世界文化遺産으로 지정되어있다.그와 그의 가족묘지도 집 아래 산중턱 한 모퉁이에 보존되어있다.大統領을 지내는 등 정치경력이 화려한 그지만 그의墓碑에는 자신의 요청에 따라 다음3가지만 쓰여 있다.Virginia大學 設立者. Virginia宗敎自由條例 制定者.獨立宣言文 作成者.그답다 싶었다.


Smithonian Museam, Natural History.jpg

(Slmithonian 自然史博物館)


Washington D.C.Smithonian博物館美國의 자랑이다. Smithonian博物館航空宇宙,美國歷史,自然史美術館그리고硏究室등으로 이루어져 있다.일반에게 가장 인기있는 곳이自然史博物館이다. 9/11 Terror事件後보안강화 문제 때문에 입장 때電子探知機를 거쳐야 했다. 1910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된 이博物館에는 거대한恐龍,,의 각종 동,식물,어류의 화석과 뼈,그리고 광물,보석,운석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모두12500만점의 각종 자연,문화유물이 소장되어있는世界最大自然史博物館이다. 1층에는22500萬年前에 생존했던 각종 공룡 및 포유동물의 뼈와 수중생물의 화석, 46억년전의 운석,각종식물의 화석,빙하시대동물의 뼈와 화석 그리고Asia지역의 문화유산 등이 골고루 전시되어 있고2층에는 지질,보석 및 광물과 우주인들이 직접 가져온 것을 포함한2만개가 넘는 운석과 고대 도자기,파충류 및 각종 동물의 뼈,그리고 곤충화석 등이 진열되어 있다.加工寶石전시실에는40-50캐럿급의 가격측정이 불가능한Diamond, Ruby, Sapphire등 각종 보석이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이 밖에Boxing선수인Muhammad Ali의 복싱글로브와George Washington大統領의 의치(義齒)도 소장되어 있다.美國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구조물이 많지만VirginiaNorfolk에서大西洋저편Delaware를 연결하는Chesapeake Bay Bridge-Tunnel도 그 중의 하나이다.世界7大不可思議土木工事의 하나로 꼽히는 약30km길이의 이 교량은1964년에 완공되었다.교량 중간에1.6km의 터널이2개 있고 양쪽 끝은 서로 보이지 않는다.이 교량 위를 드라이브하다 보면 차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열린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5월의 시원한 바다바람이 머리를 맑게 해 준다.


lLuray Caverns.png


Blue Ridge Parkway.png


Washington D.C.에서100km거리에 있는美國東部에서 가장 큰 규모인鐘乳石동굴Luray Caverns은 한번 돌아보는데1시간 정도 소요된다.이 동굴은1878년 한 주석세공인과 사진사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단체관광객들의 뒤를 따라 지하로 들어서자 우선 시원하고 통로와 주변이 무척 깨끗하게 느껴졌다.안으로 들어갈수록 통로 옆으로 크고 작은 종유석이 사방에 꽉 차 있고10층건물 높이의 넓은 홀 여기저기에10톤 전후의 종유석이 지면까지 닿아있다.지하 넓은 홀에 가득히 퍼져나가는 종유석파이프 오르간(Stalacpipe Organ)의 장엄하면서도 청아한 음향이 오래도록 귓전에 맴돌았다. VirginiaFront Royal에서 시작하여TennesseeGreat Smoky Mountains발치에까지 이르는 장장920km에 이르는Blue Ridge Parkway는 동부의Appalachian山脈의 등성이를 따라 이어지는美國1Drive Couse로 꼽히는 길이다. 1939년에 완공된 이 길은 해발 최저220m에서 최고2020m높이까지의 산길이다.制限速度가 시속40~72km(25~45마일)인데다 굴곡이 심해完走에는 이틀 정도 걸린다.길이山頂上을 계속 좌우로 바꾸어 가면서 이어지기 때문에 양쪽경치를 골고루 감상할 수 있어 좋다.이 길에 들어서면 어쩌다가 나타나는 산골마을 외에는都市는 볼 수 없다. 1000km가까운 험한 산길을70년전 그 시대에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여름이면 길 양옆으로 죽죽 뻗은 전나무,단풍나무,떡갈나무,참나무,솔송나무 와 그 밖에도 이름 모를 나무와 숲이 하늘을 덮어 터널을 이루고 가을이면 현란한 색갈의 단풍은 지나가는 사람의 넋을 빼앗는다.동행한李兄이거 정말..”,아니면 가끔씩-만 되풀이한다.高度에 따라樹種이 달라지고高度에 따라 나무의 자라는 확연히 다르게 나타난다.길 옆으로 사슴과 야생칠면조 들이 심심찮게 지나간다.


Beltway, Washington D.C,.jpg

美國政府國立公園을 비롯한 국토의 자연관리에 철저한 나라이다.사막을 초원으로 바꾸는 일에서부터 도로변의 잔디손질과 청소작업에 이르기까지 관리작업이 하루도 빠짐없이 시행되고있다.全國.州立公園은 물론 역사적 유적과 기념물의 보존,관리도 철저하다.관리도 실용성과 미관을 동시에 추구한다.이를테면.州立公園의 경우 안내간판 같은 것도 나무로 만들어 주변과 잘 어울리게 하고 도로의 가드레일도 그곳 분위기에 맞게 적당한 크기의 돌로 쌓는다.美國의 역사유적지나 박물관은初中學生들이 현장학습을 위해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교사나 현지 가이드가 학생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학생들은 메모를 하고 질문도 한다.그들의 생생한 교육현장을 보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과외에 짓 눌려 교과서와 참고서 외에는 책 한 권 제대로 읽기 어려운 우리아이들의 지친 얼굴이 그들의 얼굴에 오버랩되었다.엿새 동안 다니면서 받은 가장 좋은 선물은 청명한 날씨였다.딱 한번 갑자기 쏟아진 우박 때문에高速道路20여분간 서 있었던 것을 제외하곤 항상 쾌청이었다.모르는 곳을 다니면서도 푸짐한中國Buffet를 여러번 즐겼고,컵라면에 밥(햇반)을 말은 알싸한 맛,잠간 한눈파는 사이 출구를 지나Washington D.C.郊外Beltway를 지나쳐, 50km나 더 돌았던 일,길가에서 일을 보는黑人女人의 바지가 검정색이라 벗었는지 여부에 구분이 안가黑人은 검정 바지 벗으나 마나라며 둘이서 박장대소한 일들이 에피소드로 기억에 남는다.百日때 한 번 보고 두돌이 지나도록 대면하지 못한孫女를 만난다며 갔던 것이孫女랑은 몇일 놀아주지도 못하고自動車만 실컷 타고 돌아왔다.엿새동안4000km를 뛰었다.美國도착하던 날 제 어미의 손을 잡고 집 앞에서 기다리던 두 살짜리가에서 내리는 할아버지를 보고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아장아장 걸어오던 해맑게 웃음 띤 그 작은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20067權泰鳴 作成. 2026-07-25,서울商大58會 傳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총동창회
주소 : (08826) 서울 관악구 관악로1, 서울대학교 58동 121-1호Tel : 02)761-2278/7172Fax : 02)761-7110사업자등록번호 : 107-82-61468
Copyright © 2020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총동창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