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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7월23일 [權泰鳴칼럼] 北間島 抗日獨立運動 遺蹟地를 돌아보고(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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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장시 작성일26-07-23 14:40 조회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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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23[權泰鳴칼럼]北間島 抗日獨立運動 遺蹟地를 돌아보고(4/4)


和龍市のSymbol.jpg

(和龍市의 Symbol)


龍井서남쪽의和龍朝鮮族의 집중거주지로21만 명에 이르는人口中 朝鮮族60%를 차지하고 있다.외곽도로의 언덕 위에檀君敎祖로 하는大倧敎를 창시한 나철(羅喆, 1863~1916)을 비롯하여 서일,그리고2대교주인 김교헌 등3인의 묘를 한곳에 모아 잘 다듬어 놓았다.가 다니는 도로 바로 옆이어서 위치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았으나 그래도 독립투사들의 뜻을 기려 그만큼이라도 기억해준 현지교민들의 애국심과 정성이 느껴졌다.이들大倧敎지도자들은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서和龍일대에서 민족교육과 독립운동가의 양성에 힘을 쏟았다.靑山里전투의 주력부대인北路軍政署의 많은 장병들이 대종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和龍市에는 또한日本軍의 공격으로부터 어랑촌을 지켜낸 독립군용사들을 기념하는13勇士紀念碑和龍市공설운동장 남쪽 언덕에 우뚝 서있다.


中央이 李相卨.png

(中央이 李相卨)
   

北間島지역의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의 중심지는龍井이다.龍井韓民族이 건설한 도시다.지금도26만여명에 이르는龍井市 人口70%朝鮮族이다.延吉에서 남쪽으로30km떨어진 거리에 있는龍井은 항일독립운동의 성지이자 민족교육의 산실이었다.일찍이1906년 이상설(李相卨, 1870~1917)이 창설한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시작으로 김약연이 세운 명동학교에 이어1921년에 문을 연大成中學校는 민족시인尹東柱를 비롯하여 수많은 교육자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민족교육의 총본산이었다.龍井市內로 들어가海蘭江에 걸쳐있는 교량을 건너자 바로大成中學校였다.이 학교는 지금도1,700여 명의 조선족학생들을 위한 배움터가 되고 있다.龍井1중학교로 이름이 바뀐 학교의 교문을 들어서자 체육복을 입은200여 명의 학생들이 넓은 운동장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놀고 있었다.

 

尹東柱(1917~45).jpg

    (尹東柱, 1917~45)


   (大成中學校)

龍井市 大成中學校.png

  

교문 바로 오른 편에 아담한 대성중학교건물이 첫눈에 들어왔다.엷은 회색벽돌건물 중앙의 출입문 앞에 윤동주의 서시를 음각한 대리석 시비가 서있고2층은 당시의 민족교육운동과 항일운동사,그리고 이 학교졸업생들의 활약을 소개하는 패널이 벽에 가득했다.윤동주의 서시는 검은 대리석기반 위에 마치 우리의 전통초가지붕 모양의 비석을 얹고 그 전면에 시를 쓴 흰 대리석 판을 붙여 놓았다.서시는 우리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구절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詩句尹東柱가 다녔던日本 京都同志社大學교정에 세워진大理石碑에도 음각돼있다.북간도에서 출생하여 용정의 명동학교와 대성중학교를 나와 연희전문을 거쳐同志社大學에 유학 중이던尹東柱는 사상범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2년 형을 선고 받고九州 福岡형무소에서 복역중 해방을 여섯 달 앞둔194521628세를 일기로 옥사했다.윤동주(尹東柱, 1917~1945)日本軍生体실험을 받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龍井市교외에 위치한 명동촌에尹東柱의 생가와 그의 외삼촌인 독립지사 김약연 목사가 세운 명동교회가 나란히 서있다.명동촌은 도로에서 조금 낮은 꽤 넓은 개활지에 형성돼있었다.자동차도로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한 면에명동’,그리고 다른 면에尹東柱生家라고 새겨진 커다란 자연석을 세워놓았다.지금은紀念館이 된 교회에는 소박하지만 당시의 기록과 사진 등이 잘 보존돼있어 방문객들이 그時代歷史를 한 눈에 볼 수 있다.교인이 없어서인지 현재 일요 예배 등 교회집회는 없지만 말끔하게 정돈된 강대상과 그 뒤 벽에 십자가를 붙여 놓았다.尹東柱生家에도 가재도구가 가지런하게 잘 진열돼있었다.명동촌은1899년 김약연 등 함경도사람 다섯 가구가北間島로 이주하여 세운 한인마을이다.명동촌에는100년이 넘은 한옥도 남아있다.

 

龍井市 尹東柱生家.png

 (尹東柱 生家)


尹東柱生家1932尹東柱一家龍井으로 이주하면서他人소유로 넘어간 뒤 폐가가 됐다가1981년 명동촌과龍井文人協會의 요청으로龍井市가 관광지로 승인함으로써19948월에 복원,역사적 유물로 지정됐다.집 안팎을 둘러보다 학생들의 생활기록이 적힌 자그마한 흑판 앞에서 걸음이 멈춰졌다.생가 바로 옆 작은 건물벽에 걸어둔 가로1m,세로50cm정도 크기의 흑판에 백묵으로 쓴1927년봄3학년1반의 생활기록은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다. “조선족 최초소학교 명동소학교3-1.금주에 할일:아침저녁 치솔질 잘하기,손발을 깨끗이 씻자.청소당번 윤동주,떠드는 학생 송몽규,구구단 못 외우는 학생 문익환,지각생 김옥분.학교종이 땡땡땡.”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잠시8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 당시 코흘리개 학생들의 모습이 머리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윤동주의 고종사촌 형인 송몽규는 문학청년으로 독립운동에 힘을 쏟았으며京都帝國大學재학시절인1943710京都朝鮮人學生民族主義그룹의 주모자로 체포됐다가 해방을 넉 달 앞둔1945418生体실험대상이 돼日本에서29세를 일기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그는龍井에 있는尹東柱墓옆에 묻혔다.


一松亭.png

龍井市에서 서남쪽으로4km쯤 떨어진 비암산 정상에 우뚝 서있는一松亭2세 소나무와6亭子는 멀리서도 금방 눈에 들어왔다.아직 우람하게 크진 않았지만 늠름한 모습이 힘찬 기개를 느끼기에 충분했다.一松亭은 본래 이 산 정상에 있었던 소나무로 가지를 친 둥글 펀펀한 모습이 마치 돌기둥에 청기와를 얹은亭子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龍井에 살았던韓民族獨立運動家들과 일반주민들은一松亭일대를抗日鬪爭袐密集會장소로 사용했기 때문에 성스러운 곳으로 생각했다.이러한 사실을 눈치챈日本軍은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인근에 사격장을 만들고 소나무를 사격과녁으로 삼아 총을 쏘고 몰래 나무껍질을 벗기거나 밑둥치에 쇠못을 박는 등 못된 짓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소나무는 얼마안가 결국 말라 죽고 말았다.지금亭子앞에는1990년 현지 동포들이 심은一松亭2세가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一松亭에 올라서자 아래로龍井市와 인근의 넓은 들판을 관통하는海蘭江이 한눈에 들어왔다.수심이 깊지 않은 듯 강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海蘭江에는 맨땅이 마치 누더기처럼 물위로 솟아올라 있었다.나도 모르게先驅者의 첫 절이 목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一松亭푸른 솔은 늙어늙어갔어도 한줄기海蘭江千年두고 흐른다.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先驅者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마치 철들기 전 떠난 고향 땅을 나이 들어 찾아간 미안함과 그나마 더 늦기 전에 들르게 된 게 다행이었다 싶은 감회가 교차했다.


海兰江和乐然公园(海蘭江).jpg

(海蘭江 公園)

 

Yanbian_Univerisity_of_Science_and_Technology.jpg

 

Yanbian_University.jpg


(延邊大學)

滿洲間島일원은朝鮮族의 비중이 큰 곳이다.朝鮮族이 집중돼있는延吉일대는 어디를 가나 도로표지판이나 건물과 상점간판에 한문과 한글이 병기돼있고 후손은移民4세로까지 이어지고 있다.韓民族학생만 다니는 초등학교가 있는가 하면 동북중국에서 유수한 대학으로 꼽히는延邊大學韓民族학생이 반을 넘어서고 있다.일제의 핍박과 엄청난 가난의 시련을 이겨내고 개척한 그 곳에 뿌리를 내린韓民族동포가 지금은 백만을 넘어서고 있다.중국 내56개 소수민족 중에서 아홉 번째로 큰 집단을 이룬 질경이처럼 질긴韓民族은 생활의 여유와 함께 민족의 관습과 문화전통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延吉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고도를 잡자 아래로 아스라히 펼쳐지는 광활한 대지에서 독립군이 외치는大韓獨立萬歲의 메아리가 귓전을 스치는 듯 했다.

<>2015-10-01權泰鳴 作成, 2026-07-23서울商大58會 傳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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