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中의 ‘文字 로열티’ 분쟁 이야기] : 李大根 /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경제학과 5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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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23-08-10 11:23 조회1,257회 댓글0건본문
[日-中의 ‘文字 로열티’ 분쟁 이야기]
李大根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경제학과 58학번)
東洋의 두 가지 不可思議
일찍이 서양의 어떤 동양학자가 이런 논평을 했다고 한다. 동양학을 공부하다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 不可思議(奇蹟)에 빠지게 된다는 얘기다. 하나는 그 옛날 古代 中國人이 어떻게 그 어려운 ‘漢字’를 그렇게 많이 만들어냈을까 하는 의문이고, 다른 하나는 近世에 들어 日本人이 어떻게 그 어려운 서양의 학술/전문/기술 용어들을 그렇게 많이 ‘漢字語’로 번역해 낼 수 있었을까 하는 놀라움이 그것이란다.
前者에 대해서는 평소 우리가 몸소 겪고 있는 일이기에 서양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사리 수긍할 수 있는 일이지만, 後者의 경우는 ‘뭘 그렇게까지! 不可思議니 뭐니 할 것까지 있느냐?’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으리라. 그러나 알고 보면, 후자의 경우 역시 동양으로선 전자에 버금갈만한 문화사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평소 별 생각 없이 마구 사용하고 있는, 그리하여 이미 慣用語로까지 된 경제다 사회다, 민주다 자유다,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하는 말들을 도대체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이런 말(語彙)들도 하늘이나 땅, 밥이나 술, 바다나 구름처럼 일찍이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지금까지 사용해오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漢字語로 된 앞의 經濟, 社會, 民主, 自由 등은 따지고 보면 아파트나 빌딩, 커피나 티, 와이셔츠나 넥타이처럼 어디까지나 外來語라 할 수 있다. 다만 앞의 것은 ‘漢字’로 표기될 수 있다고 하는 점이 뒤의 것과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앞의 한자어로 된 이들 外來語는 처음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은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후 일본에 의해 한국(대만, 중국 등 한자문화권)에 전수되어 함께 사용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럼 일본은 이를 무슨 재주로 만들었을까? 表意文字인 漢字의 奧妙한 造語力을 바탕으로 英語를 비롯한 서양언어(어휘)를 漢字語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런 단어들도 만들어졌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나 至難한 과정이었을까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이렇게 보면 日本의 근대화/서구화 과정이란 바로 이들 서양의 言語와 文物을 한자어로 번역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일본 서양어 번역사업의 중심에는 언제나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란 인물이 등장한다. 慶應義塾(대학)의 설립자인 그는 明治維新 직후 ‘明六社’란 지식인단체를 만들어 서양어 번역사업은 물론 국민교육 및 계몽운동에도 全心全力 先驅的 역할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칭송되고 있지만, 기실 범위를 넓혀보면 오히려 그는 ‘東洋(한자문화권) 근대화의 아버지’로 格上되어야 하지 않을까!
漢字의 偉力과 일본의 ‘제2 漢字’ 創製
그렇다고 하여 이 엄청난 번역사업이 日本인에 의한 그들의 독자적 업적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바가 있다. 앞서의 지적처럼, 그 바탕에는 분명 表意文字로서의 한자 特有의 무한한 造語力이 전제되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漢字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이런 엄청난 번역은 엄두도 낼 수 없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한자사용국과는 달리 오로지 일본만이 그 일을 해낸 그들 特有의 資質/氣質을 과소평가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일본인 특유의 資質(氣質)이란 무슨 의미일까? 흔히 지적되고 있는 바이지만, 일본인은 무슨 일이든 한번 잡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자기 생명을 바쳐서라도 끝까지 일을 해내고야 마는 그 악착같은 기질, 예컨대 ‘究極精神’이랄까, ‘一生懸命’의 자세로 이해하면 어떨까? 아무튼 그런 일본인 특유의 기질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런 不朽의 역사적 偉業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에 바로 서양인이 동양 문화의 두 번째 不可思議로 일본인의 이 서양어 번역사업을 들게 된 所以가 있지 않을까? 아울러 이 번역사업의 성공이야말로 일본인 특유의 究極정신이나 一生懸命의 자세가 이룩한 업적의 이를테면 最高峰이요 絶頂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일본인은 무슨 수단과 방법으로 이 과업을 해냈을까? 한마디로 일본식 ‘제2 漢字’의 創案으로 그것은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太初의 중국 한자(元 漢字)는 주지하듯이 ‘一字一意’를 원칙으로 하는 세계 그 어디에서도 類例가 없는 뜻글자(表意文字)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곧 글자 하나하나가 바로 고유의 의미를 갖는 단어(語彙)로 된다. 그런데 이 一字一意의 ‘元 漢字’를 가지고서는 도저히 그 복잡다단한 서양의 言語/文物을 번역해 낼 수 없다고 함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窮卽通이라고 생각해 낸 것이 漢字 2字(기본적으로)를 서로 묶어서 하나의 의미를 가지는 ‘二字一意’의 새 단어(어휘)를 創案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이른바 일본 스타일의 ‘제2 漢字’의 탄생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二字一意’의 새 단어 創製만이 아니라, 일본 스스로의 필요성에 따라 일본식 한자를 새로 만들어 쓰기도 하고(例 : 働, 沓 등), 또 획수가 너무 많아 쓰기 복잡한 한자는 간단하게 略字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例 ; 萬->万, 國->国, 學->学 등). 후자의 일본식 略字는 그 후 중국(毛澤東)의 ‘文字改革(簡体化)’ 사업의 본보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중요한 사실은 일본이 제2 漢字를 만들어내기 전까지는 한-중-일 어느 나라에도 예컨대, 家族(family), 個人(individual), 社會(society), 自然(nature), 自由(liberty/freedom) 등의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일본 번역가들이 그래도 유사한 개념의 단어가 어딘가에 숨어있지 않나 싶어 중국의 古典이란 古典은 죄다 뒤졌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 그리하여 일본의 서구화/근대화과정은 이상과 같은 목숨을 걸고 極限으로까지 치닫는 일본 번역가들의 피눈물 나는 제2 한자과정에 다름 아니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탄생한 번역어는 그 후 여러 루트를 통해 다시 한국, 대만, 중국 등 한자문화권으로 전파되기에 이른다.
1970년대 국제적으로 수많은 開途國 중에서 유별히 성장률이 높은 4나라(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Aslan NICs(신흥공업국)’ 또는 ‘4마리 아시아 小龍’으로 불렀는데, 이들 4국이 바로 일본에 의한 번역어 영향으로 고도성장이 가능하게 되고, 지금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서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日-中의 ‘文字 로열티’ 紛爭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1972년 일-중간의 국교 再開 이후 중국경제의 대외개방화가 이루어지고, 이에 중국으로서는 앞선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는데 그 중에는 사용료(로열티)를 내지 않고 몰래 가져다쓰는(盜用) 경향이 늘어나게 되자, 이에 참지 못한 일본이 소위 국제 기술이전에 따른 ‘知的所有權’ 문제를 제기하자, 한참 듣고 있던 중국 왈, “그렇다면 우리도 할 말이 있다. 일본이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한자를 아무 代價 없이 장기간 사용해왔으니 그에 대한 사용료(로열티)를 정확히 계산해서 지불하라”고 반격했단다.
코너에 몰린 日本이 생각 끝에 ‘…그럼 좋다, 우리가 그동안 우리 식의 ’제2 한자‘를 만들어 유럽의 그 어려운 言語/文物/制度 등을 알기 쉽게 번역해 놓은 것을 중국이 아무 代價 없이 지금도 그냥 사용해 오고 있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라!’고 엄포를 놓았단다. 이에 대해 중국은 다시 일본더러 우리가 만든 漢字를 原材料로 하여 너희가 제2 한자를 만들었으니 오히려 우리가 로열티를 받아야 할 입장이라며 일본측 요구를 일축했단다.
結 – 한국인의 文字 色盲
일-중간의 文字로열티 논쟁은 이 정도로 피장파장(비김)으로 끝난 셈이지만, 그 중간에 끼어있는 한국의 처지는? 그런 의미 있는 논쟁에 숟가락 하나 얹을 입장도 못 됨은 두말할 것 없거니와, 지금까지 오랜 세월 중국 漢字의 사용은 물론, 일본 번역어(제2 한자)의 사용도 완전 공짜로, 한마디로 無賃乘車 해온 것밖에 더 있는가?
거꾸로 그동안 漢字를 둘러싸고 얼토당토 않는 엉터리 수작들만 난무했다. 一例로 중국 한자는 원래 중국인(漢族)이 만든 것이 아니라 동쪽 변방의 東夷族이 만든 것이고, 그 동이족 중심에 조선족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한자는 우리 조상이 만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수작이라든가, 古代 우리 조상이 한자를 비롯한 중국 文物을 일본에 잘 전수해주었기에 그걸 토대로 일본이 제2 한자도 만들고 서양어 번역도 해내고 한 것 아니냐는 실로 잠꼬대 같은 헛소리도 있었다. 그야말로 ‘文字 色盲’이나 할 수 있는 헛소리요 詭辯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기실 더 심각한 데 있다. 외골수 國粹主義者들은 이제 중국 ‘元 漢字’를 아예 추방하고 ‘한글’로만 살아가자는 한글전용주의가 得勢하여 마구 無所不爲로 설치고 있는가 하면, 덩달아 일본이 ‘2차 漢字’로 만들어 낸 서양 번역어까지도 원래의 한자 대신 한글로 표기하여, 그것이 마치 우리 스스로가 직접 한글로 번역한 것처럼 국제적 詐欺를 치고 있다. 그야말로 稀代의 문자 사기극이라 할만하다.
한자를 추방한 그 자리에 그럼 무엇이 들어왔는가? 두말 할 것 없이 英語가 압도적이지만, 그밖에 불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 가지각색이라 할 만하다. 처음 수입 상품(특히 藥品)으로부터 시작하더니 이제 아파트 이름을 비롯하여 기업, 會社, 은행 등 큰 기관 이름은 물론, 소규모 일반 상점이나 식당. 카페, 건물 이름에 이르기까지 무조건 外來語 이름 달기에 경쟁이라도 붙은 풍경이다. 국제화/글로벌화 시대에 당연한 일 아니냐고 抗辯할 수도 있으나, 저것이 우리 고유어인지 외래어인지 아니면 번역된 한자어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우니 문제 아닌가. 사람들이 갈수록 ‘文字 色盲’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보니, 어찌 疏通, 소통을 따질 여지가 있겠는가.
끝으로 한마디. 文字 色盲 한국인에게 고함!
한글은 表意文字(뜻글자)가 아니라 表音文字(소리글자)임을 명심하라. 아울러 世宗이 창제한 ‘訓民正音’은 오늘의 ‘한글’과는 아주 딴판임을 알아차리도록. 그리하여 한글과 한자를 적절히 混用할 때(일본 처럼), 마치 수레의 두 바퀴가 같이 돌아갈 때나, 새의 두 날개가 같이 접히고 펴질 때처럼 人間 萬事가 亨通할 것임을 명심하시라! (2023.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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