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8월2일 [權泰鳴칼럼] 日本刀를 만드는 젊은 匠人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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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장시 작성일26-08-02 16:20 조회51회 댓글0건본문
2026년8월2일 [權泰鳴칼럼] 日本刀를 만드는 젊은 匠人과의 만남

直徑이 10cm나 되는 대나무를 무 베듯 싹둑 자를 수 있는 日本刀는 간결(簡潔)과 절제(切除)美의 극치이자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능력의 증명이기도 하다. 에도막부(江戶幕府)를 창설한 도쿠가와(德川)가문의 검술사범을 지낸 ‘야규 무네노리’(柳生宗矩)의 아버지 ‘야규 세키슈사이’(柳生石舟斎)는 시들어가는 꽃도 그가 劍으로 꽃대를 잘라 화병에 꽂아두면 생기를 되찾았다는 전설적인 검성(劍聖)이었다. 꽃을 살리는 힘은 검에 스민 검객의 정기에서 나온다고 했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칼날이 지나간 작약(芍藥) 꽃줄기 斷面의 범상찮음을 알아본 방랑검객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는 뒷날 日本刀 第一의 劍客으로 올라섰다. 凡人의 눈으론 판별이 불가능한 미세한 부분의 차이점을 읽어낸 劍聖들의 실력과 예리한 관찰력을 칭송하는 대목이다. 宮本(미야모토)는 두 개의 검을 동시에 사용했다는 說이 있으나 한 개의 검을 좌우 두손을 편한대로 바꾸어가며 구사한 검객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宮本武藏)
武器로서 검이 日本刀에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3世紀부터다. 이 시대에 지금의 東京 서쪽 사이타마현(埼玉県)의 이나리야마(稲荷山)古墳과 日本列島 西南部 시마네현(島根県)의 쓰쿠리야마고분(造山古墳)에서 무기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鐵製 劍이 출토되었다. 특히 5世紀후반 이나리야마古墳에서 발굴된 劍에는 당시 王을 받든 臣下의 공로를 치하하는 115개로 된 漢字글귀가 새겨져있다. 나라(奈良)時代에서 헤이안(平安)時代에 이르른 7-9세기 사이에 제작된 검은 오사카(大阪) 四天王寺에 보존돼있는 병자숙림검(丙子掓林劍)과 七星劍 외 현재까지 전해지는 劍은 찾기가 어렵다. 이 시대의 劍은 지금의 日本刀와 달리 모두 곧게 뻗은 직도(直刀)였다. 초승달처럼 완곡하게 휘어진 지금의 日本刀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定說이 없다. 다만 10世紀 들어서부터 말(馬)이 전투에 동원되기 시작하면서 기마전에 사용이 유리한 길고 휘어진 劍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古代 日本刀는 百濟에서 처음으로 말을 들여갔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15대 오진천황(應神天皇) 15년 편에 "百濟王이 아직기(阿直伎)를 통해 말 두 필을 보내왔으며 가루(輕, 지금의 奈良県 가시하라시(橿原市)의 사카노 가미(坂上)의 百濟人에게 맡겨 기르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직기는 古代 日本의 유력한 百濟氏族인 야마토노 아야우지(東漢氏)가문의 始祖가 되었다. 日本에서 말 사육이 늘어나고 말문화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됐다. 東京北部의 군마(群馬)현은 말과 관련된 이름이며 古代 이 지역에 9개의 말목장이 있었는데, 이 중 5개가 新羅와 百濟人들이 소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日本刀도는 日本이 개발한 독자의 형태와 기능을 겸비한 武器이며 千年에 이르른 긴 歷史를 지니고 있다. 12-14세기에 걸쳐 武人이 정권을 잡은 헤이안(平安)時代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刀劍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 시대부터 처음으로 政治中心勢力이 이전의 貴族에서 武人으로 이동되는 이른바 幕府時代가 시작된다. 日本刀 歷史에서 最高의 刀劍제작자로 추앙받는 마사무네(正宗)도 바로 이 時代에 등장한 人物이다. 正宗의 刀劍제작 作風은 당시는 물론 후세의 日本刀 刀工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어 戰國時代를 지나 17세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권력을 잡은 ‘에도막부’(江戶幕府)時代로 넘어가면서 江戶와 오사카(大阪)를 중심으로 많은 名刀工들이 등장했다. 이 때부터 그동안 武器用途로만 제작돼 온 劍이 일종의 예술품으로도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刀工사회에도 예술가風의 刀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武士들의 전용 물인 劍이 부유층의 장식품으로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에도막부(江戶幕府)말기 復古主義 바람이 불기시작하면서 옛날 방식의 刀劍제작이 다시 試圖되기도 했으나 1867년의 明治維新직후 폐도령(廢刀令)이 시행됨에 따라 軍人과 警察官 외에는 刀劍착용이 금지되었다. 이로써 700여년간 이어져 온 武士階級이 해체되고 劍의 사용도 동시에 막을 내렸다.
서리가 내린 초겨울 아침 이른시간, 전날밤 묵은 나라(奈良)市에서 남쪽으로 10여km 거리인 덴리(天理)市를 찾았다. 驛에 내려 지도를 보며 10여분 걸어가자 조용한 住宅街 얕은 개울턱에 흡사 창고같은 허름한 집한채가 눈에 들어왔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日本刀를 만드는 ‘오오다 슈사쿠’(太田周作)는 고운 피부색에 앳된 모습의 새파란 젊은이였다. 日本刀를 만드는 사람이라 지긋한 나이의 刀工을 예상했었는데 의외였다. 인사를 하고 젊다고 했더니 서른다섯살이라며 가벼운 웃음으로 답례해 주었다. 내민 손을 잡자 손바닥이 발바닥처럼 두껍게 느껴졌다. 劍제작에 손을 댄 지가 12년째라며 각종 도구가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흙바닥 작업장을 대충 정리한 후 작은 의자를 갖고 와 앉으라고 권했다. 대체로 장인(匠人)과의 대화는 주고받는 말의 연결이 쉽지 않다. 묻는 쪽이 그 방면에 아주 무지하면 대화의 연결이 어렵고 짧은 지식으로 좀 안다는 듯 전문용어를 몇 개라도 구사하면 오히려 경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太田씨는 상대 하기가 아주 편한 사람이었다. 쉬운 일도 많은 요즘 세상에 어떻게 힘든 刀劍제작의 길을 택하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에는 한 뜸의 주저도 없이 바로 “좋아해서”라고 했다. 大學을 마친 그는 곧장 나라현(奈良県)의 이름 높은 스승 밑에서 수련 의무기간인 4년 동안 호된 훈련을 받고 國家資格試驗을 통과한 뒤 다시 스승의 작업장에서 2년 더 실습을 마친 후 비로소 자기 이름을 내걸었다고 했다. 자격시험중에서는 한주간 동안 실시되는 短劍제작 실기시험이 다른 어떤 시험보다 통과가 어렵다고 했다.
日本刀도 제작은 크게는 다섯 단계이나 더 쪼개면 21개 과정에 걸쳐 정성을 쏟아야 하는 힘든 작업이라고 했다. “한 자루 제작에 세 사람이 붙어 보통은 석 달에서 여섯 달, 길게는 1년이 소요된다. 天職으로 생각하지 않고는 아예 덤벼들지 말아야한다는 분야로 알려져 있다”며 원료를 만드는 첫 단계부터 칼 자루의 등 부분에 제작자의 이름을 새겨 넣는 마지막 단계까지 그의 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日本刀는 원료 선정부터 까다롭다. 대부분의 칼은 선철이나 고철등을 재활용하지만 日本刀는 반드시 사철(砂鐵)에서 뽑아낸 最高級 鐵인 다마하가네라는 옥강(玉鋼)만으로 만들어진다. 옥강에는 名劍제작에 필수요소인 적당량의 고품질 炭素가 포함돼있다. 炭素성분이 지나치면 부러지기 쉽고 너무 적으면 쇠가 물러서 刀劍에 적합치 않다. 玉鋼은 길이 3m, 너비 1m 크기의 흙으로 만든 노(爐)에서 탄생된다. 이 爐에 砂鐵을 채우고 사흘 밤낮을 섭씨 800도 이상의 高熱을 가하면 다른 성분은 연소되어 없어지고 탄소를 포함한 고품질의 쇠덩어리만 남게 된다. 이것이 옥강이다. 이 때 불의 힘을 강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발로 밟는 풀무를 ‘다타라’ 라고 한다. 옥강이 완성될 때까지 刀工들은 사흘 밤낮을 꼬박새며 불을 지핀다. 太田씨는 흙 火爐 대신 벽돌로 된 爐를 사용하고 있었다. 옥강의 원료인 양질의 철광석은 시마네(島根)현에 많아 刀工들은 이곳을 日本刀 제작을 위한 신의 땅이라고 부른다.
옥강을 절편 모양의 얇은 조각으로 만들어 1000도의 高熱에 달군 후 찬 물에 넣었다 두들기는 작업을 10회 이상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탄소함량이 많은 철편과 적은 철편을 분류한다. 피철(皮鐵)이라고 부르는 탄소성분이 높은 철편은 劍의 겉부분에, 그리고 심철(心鐵)이라는 저탄소 함유 철편은 劍의 속부분으로 사용된다. 다음으로 이들 철편을 다시 1000도의 고열에 달구다 꺼내 접어가며 무거운 쇠망치로 두들기는 작업을 10여 차례 반복하여 절편 모양을 길게 늘인다. 오리가에시(折返)라는 이 작업을 통해 검의 피질과 심철 부분을 완성한다. 망치는 직경이 5cm, 길이가 20여cm 크기의 둥근 모양으로 나무자루까지 합해 무게가 5kg 정도나 되 이것으로 백여 회를 쉬지 않고 두드리는 것은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내리치는 부위도 正中央을 맞추어야하기 때문에 엄격한 훈련을 통해 기술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高溫에 달구어진 철을 망치로 두드릴 때는 철의 빛깔에 따라 온도를 파악하기 위해 작업장의 조명을 끈다. 다음 단계로 피철을 U자형으로 만들고 그 안에 심철을 끼워 다시 900도 정도의 열을 가하면서 100여 회 두드리면 비로소 日本刀의 모양이 갖추어진다. 초벌 劍은 몸체의 등 부분은 삼각 모양으로, 그리고 칼날 쪽은 예리하게 된다. 이어 劍을 다시 800도 정도의 열에 달군 후 찬물에 넣어 급냉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뒤틀림을 조정한다. 그리고 전체가 검붉은 색을 띨 때까지 약한 열을 가하고 식히면서 거친 표면을 다듬는다. 이상의 단계를 거친 검에 점토와 탄과 지석(砥石)가루를 물로 묽게 비벼 표면에 바른 후 닦아내고 刀工의 이름과 제작연도와 문양을 그려 넣어 다시 불에 넣은 후 마지막으로 연마공에게 넘겨 여러 개의 숫돌로 날을 세우면 비로소 日本刀 제작의 길고도 힘든 여정이 마무리된다. 시마네현(島根県)에는 천년 넘게 日本刀를 연마만 해오고 있는 가문도 있다.
여러 과정의 실연을 곁들인 太田씨의 설명은 두 시간 너머 걸렸다. 日本刀를 만드는 그의 작업장은 보기에 원시적이고 온갖 도구가 사방에 어지럽게 널려있어 산만하기 그지없었다. 옛날 대장간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나 刀工들은 그런 작업장을 신성한 공간으로 여긴다고 했다. 일이 있는 날은 새벽 일찍 정화수 그릇 앞에서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 정성을 다해 기원한다고 했다. 철과 장작과 석탄, 그리고 흙먼지가 뒤범벅인 작업장이지만 刀工들은 모두 새하얀 작업복을 입고 일한다. 그만큼 劍제작 작업을 神聖視 하고 일하는 동안 잡념이 끼어들지 않게 정결한 마음을 갖게 하는 의식의 표현이라고 했다. 日本에서는 지금도 日本刀도를 만드는 刀工을 단순한 대장장이가 아닌 日本刀人의 정신을 구현하는 현대판 연금술사로 대접하고 있다. 10시에 시작된 太田씨의 설명은 1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작업장 앞 개울 건너편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갔다. 아직은 초년생 刀工이라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듯 했다. 刀劍제작 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짬날 때 다른 일도 곁들어 하고 있지만 삶이 힘들어도 도검제작에 일생을 걸 각오라고 했다. 最高의 匠人을 향한 그의 앳된 얼굴에 비장 감이 느껴졌다. 茶와 함께 갖고 나온 커다란 刀劍사진책을 펼치면서 다시 30여분간 제작과정의 설명이 이어졌다. 刀劍원료인 주먹만한 크기의 옥강 한개와 책 한권 그리고 奈良지방 특산물인 단감 한 봉지를 선물로 받았다. 십년뒤쯤 日本에서 손꼽히는 刀工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고마움을 대신하고 일어섰다.
현재 日本에는 300여명의 刀工이 활동 중이며 이 가운데 인간문화재는 단 두 사람뿐이다. 奈良県, 島根県, 岐阜県, 神奈川県등지에 刀劍제작소가 많이 분포되어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劍은 더 이상 武器가 아닌 하나의 美術品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아직도 武士의 혼으로 상징되는 日本刀는 日本人의 정신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皇室은 물론 神社등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많은 名劍이 보존돼있다. 日本刀에는 현재 國寶로 지정돼 있는 劍이 백십여개, 國家指定 主要文化財가 약 육백 개, 그리고 주요미술품이 약 천개에 이르고 있으며 한 자루 가격이 천오백만엔 수준인 것도 있다. 국보급 劍은 모두 14세기 초 南北朝時代까지 제작된 것이며 그 후 만들어진 것 중에는 국보급이 하나도 없다.
귀국후 한달 남짓 지난 어느날, 發送地가 日本으로 된 작은 소포 하나가 배달돼왔다. 보낸 사람 太田周作. 그 젊은 刀工이었다. 손잡이와 몸체가 같은 두께의 철로 된 15cm 크기의 日本刀 모형이었다. 손잡이의 한 면엔 그의 이름이, 그리고 반대면에는 ‘一期一會(이치고 이치에)’라는 글귀가 음각돼있다. 뜻밖의 선물이었다. 감사의 뜻은 편지로 보냈다. 이 넉자 글귀는 直譯하면 ‘일생에 한 번’이란 뜻이지만 기술이든 기예든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일생에 한번 밖에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혼신의 힘을 쏟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손님에게 차(茶)를 대접할 때 일생에 한 번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끓인다는 다도(茶道)에서 비롯된 말이다. ‘부러지지도 휘어지지도 않으면서 단칼에 틀림 없이 자른다’는 세가지를 표어로 내세우는 日本刀의 특성은 현대 야금학에서도 연구대상의 최고위에 위치하고 있다. 日本刀란 호칭은 日本 아닌 외국에서 붙인 이름이다. 日本刀에서는 가타나(刀) 또는 쓰루기(劍)라고 불린다. 劍의 종류로는 손잡이를 뺀 칼 몸체길이가 71.5cm의 검을 가타나, 30-60cm 크기의 검을 와키자시(脇差), 그리고 29cm 이하를 단도(短刀)라고 부르며 가타나 중에서도 1m가 넘는 특별히 긴 劍을 다찌(太刀)라고 한다. 옛날 武士들은 언제나 가타나와 와키자시 등 두 개의 검을 차고 다녔다. 할복 명을 받은 武士가 사용하는 검은 단도 다.
가타나는 본래 武士를 위해 만들어진 武器이다. 日本刀를 상징하는 武士인 사무라이는 12세기 중엽인 헤이안(平安)時代 말기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12세기 말엽 가마쿠라(鎌倉)幕府가 개설된 뒤부터 본격적인 직업무사제도가 확립됐다. 이후 1867년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가 막을 내리기까지 700여년간 日本은 武士가 지배하는 나라로 이어졌다. 흔히 日本文化를 劍의 문화라고 한다. 日本人의 의식구조나 나라의 조직, 운영방식의 기본틀이 모두 武士時代에 정착됐다. 日本의 武士는 충성과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집단이었다. 무예와 용맹, 의리와 정직 그리고 검약 등의 덕목을 갖춘 武士는 전쟁이 일어나면 主君을 위해 목숨을 던졌다. 전쟁에서의 승리가 武士의 최우선 목표지만 얼마나 당당하고 용감하게 싸웠느냐를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았다. 명예를 생명보다 소중히 여겼고 主君에 대한 충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던 日本武士制道는 생사초탈의 정신을 본질로 하는 선종(禪宗)사상에 기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저명한 文化人類學者인 美國의 Ruth Benedict敎授는 日本文化의 원형을 분석한 그의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 Patterns of Japanes Culture(국화와 칼, 日本文化의 모형)’에서 "日本人은 劍을 자신의 몸과 동일시했다. 日本武士는 외출할 때는 물론 손님을 접대할 때나 식사할 때도 항상 劍을 휴대했다. 밤에는 두 자루의 검을 머리맡 劍 걸이에 반듯하게 걸어두고 잤다. 武士는 항상 죽음을 준비하며 산다는 자세를 잊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美軍艦艇을 들이받아 戰鬪機와 함께 散花한 가미가제(神風)특공대원들은 확실한 죽음을 앞에 두고 戰鬪機에 오르면서 모든 소지품을 다 버렸으나 日本刀만은 휴대했다는 기록도 있다. 日本刀의 제철기술은 5세기 전후 우리나라 伽耶에서 전수됐다는 게 日本刀學界의 정설이다. 日本古代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는 오진(應神)天皇편에서 “가라 카누치(韓鍛)인 탁소(卓素)라는 사람이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가라(韓)’는 당시의 朝鮮半島이며 카누치(鍛)은 금속을 달구고 두들겨 여러가지 도구를 만드는 일을 말한다. 카루치는 오늘 날의 대장장이다. 헤이안(平安)시대의 사전인 화명초(和名抄(=和名類聚抄))는 "지금의 시마네현(島根県)에 있는 오다신사의 제신이 대다라대명신(大多羅大明神)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歷史學者들은 이 대다라신은 6세기경 이 지방에 정착한 伽耶 渡來人들의 조상신으로 보고 있다. 日本書記도 30대 비다쓰(敏達)天皇 4년편에서 "新羅의 다다라(多多羅)로부터 제철기술자가 日本으로 왔다"고 전하고 있다. 古事記와 日本書記등 日本의 古代歷史書는 지금의 韓半島를 통틀어 가라구니(韓國)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라 별로는 ‘新羅를 시라기’, ‘百濟를 구다라’, ‘高句麗를 고마’, 그리고 ‘伽耶를 가라’라고 불렀다.


古事記와 日本書記 등 古代日本歷史書에 나오는 다라(多羅)는 6가야국의 하나를 가르키는 표현이다. 에도막부(江戶幕府) 때 이름난 제철기술자였던 ‘시모하라 시게나카’(下原重仲)는 그의 ‘鐵山秘書(철산비서)’에서 “천일창(天日槍, 아메노 히보코)은 이즈모國(出雲 現 島根県)에 제철기술을 전수했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문화평론가인 ‘시시도 기이치’(宍戸儀一)씨도 그의 ‘古代日韓鐵文化’에서 "古代日本에 최초로 鐵문화를 전달한 사람은 新羅王子인 천일창(天日槍)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古代日本 제철산업의 중심지인 시마네현(島根県))에는 천일창을 제신으로 하는 가나코야 神社가 있으며 島根県과 岡山県돗토리현 등 西日本일대에는 古代製鐵과 관련 있는 ‘다타라’를 붙인 地名도 여러 곳 있다. 특히 天日槍을 祭神으로 받드는 神社는 日本全域에 분포돼있다. 日本의 鐵文化는 伽耶가 그 뿌리이다. <끝> 2011년8월 權泰鳴, 2026년8월2일, 서울 商大58會 傳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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