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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5월30일 [權泰鳴칼럼] 日本寺刹에 보존된 한글四面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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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장시 작성일26-05-30 19:04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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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530[權泰鳴칼럼]日本寺刹에 보존된 한글四面石塔

 

年初日本人친구S씨가 함께 들러볼 곳이 있다며 전화를 걸어왔다.추위가 좀 수그러들 즈음 가겠다해놓고 기다리다 설 전이 낫겠다싶어 손가방에 카메라와 책한권만 넣고 일본행 첫 비행기에 올랐다.바쁘게 여러 곳을 다녀야 할 일도 없는 마음 편한 나들이라 소풍가는 즐거운 기분이었다.일본에 남아있는韓民族文化遺産을 찾아5년동안 분초를 다투며日本全域을 개미처럼 후비고 다녔던 취재여행이 생각났다.아침940東京驛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동남쪽 보소반도(房總半島)로 향했다.보소반도는 나리타(成田)공항이 있는 치바현(千葉縣)이다.맑은 날인데다 기온이 영상10도 안팎 이어서 나들이에 딱 좋은 날씨였다.친구와 얘기하는 사이 버스는 금방東京와 보소반도를 연결하는 아쿠아다리(Aqua Line)에 올라섰다. 19971218일 개통된 이海上道路는 가나가와현(神奈川縣)가와사키시(川崎市)와 치바현의 기사라즈시(木更津市)를 직선으로 연결한다. 15.1km길이에 폭4차선인 이 교량으로 하루5만대가 넘는 차량이 오간다.이 도로는 가나가와쪽10.6km海底터널로,그리고 기사라즈쪽4.5km海上橋梁으로 돼있으며 해저 길이 해상으로 올라서는 지점에 인공섬을 만들어 전체 길이는15.1km에 이른다.가나가와쪽이 해저도로로 설계된 것은 이 부분을海上橋梁으로 할 경우 하네다(羽田)공항을 이용하는 항공기의 이착륙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大嚴院.png

11시반쯤 목적지인 보소반도 남단의 다테야마시(館山市)에 닿았다.버스에서 내리자 뺨을 스치는 따스한 봄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목조주택 울타리 위로 뻗은梅花가지에 매달린 하얀 꽃잎이 흡사 작은 나비처럼 보였다.寺刹은 역에서 그리 머잖은 거리이었다.삼문(三門)기둥에 다이간인(大巖院)이란 커다란 나무명패가 걸려있다.사찰인 데도 사()자 대신 드물게 원()자를 단 이름이다.안으로 들어서자 주위가 정갈하게 정돈돼 있고 넓은 뜰 왼쪽 절반이나 되는 묘역에 비석이 빽빽하게 들어서있다.묘지 앞에 윗부분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얹은 짙은 회색의 현무암 사면석탑(四面石塔)이 우뚝 서있다. S씨가 보라고 한 게 바로 이 석탑이었다.



大嚴院 四面石塔600.png

 

[:館山市大巖院 四面石塔大巌院<概要>

元和10(1624)雄誉霊巌 上人建立名号石塔이다.玄武岩으로 만들어진總高219cm의 이石塔, 4모두가刻字가 되어있기 때문에四面石塔라고 부르고 있다.北面印度梵字로 시작,西面中國篆字,東面朝鮮의 한글.南面日本和風漢字로서,우리日本까지佛敎傳來해온國家들의言語,南無阿彌陀佛이라고名號가 새겨져있습니다.이가운데,한글은,李氏朝鮮第4代王世宗1446公布訓民正音이라는文字라고 써져있습니다.現在使用되고 있는 한글의原形이 된初期古文字로서,매우短期間消滅했기 때문에,本家韓國에서도近年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높이가219cm에 이르는 이石塔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603년 에도막부(江戶幕府)를 개설한 후21년이 지난3대 쇼군(將軍)이에미쓰(家光)초기인1624년에 세워졌다고 설명판에 적혀 있다.石塔의 동서남북4日本漢字,산스크리트어(梵語),中國篆字,그리고 한글의4가지言語南無阿彌陀佛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수많은日本石塔가운데 한글이 새겨진 보기 드문 탑이다.石塔의 한글 자형(字形)1446訓民正音제정2년후인1448년에 반포된 동국정운(東國正韻)식 한글이다.그런데四面石塔이 건립된1624朝鮮에서는 이미東國正韻이 소멸됐기 때문에 당시의 한글로 새겨진碑石은 우리나라에는 없으며 일본에만 두 곳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다이간인(大巖院)에서 멀지 않은 같은 보소반도 북쪽 후쓰(富津)시에大巖院보다30년 후인1670년에 개창된 쇼오인(松翁院)에 하나 더 있을 뿐이다.높이가239cm松翁院의 사면석탑은 상부가 삿갓모양을 한 공양탑이다.大巖院松翁院四面石塔은 모두千葉縣문화재로 지정돼있다.


松翁院.png

 

보소반도 남단의 한적한 곳 사찰에 세워진 사면비석에 한글이 새겨진 유래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한 문헌이 없어 단정하기는 어려우나17세기초德川家康(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막부를 창설한 후豐臣秀吉의 조선침략으로 단절된朝鮮과의 국교회복을 바라는회답겸쇄환사사업(回答兼刷還使事業)’을 편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日本에서 사망한朝鮮人에게 공양하고 앞으로 양국간의 평화로운 관계유지를 기원한다는 취지로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日本歷史學者들은 추정하고 있다. ‘화답겸쇄신사사업은 조선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와 일본에 납치 연행된 조선인포로를 귀국시키기 위해 벌인 외교사업을 말한다.


松翁院 四面石塔.png

 

한글四面石塔에 대해 아와(安房)문화유산포럼대표인 아이자와 노부오(愛澤伸雄)씨와 나카오 히로시(仲尾宏)京都조경예술대학 교수 그리고 향토사학자인 시시와타 히데유키(石和田秀幸)씨 등은"당시 보소반도에朝鮮人이 거주했던 기록이나 흔적이 전혀 발견되고 있지않기 때문에朝鮮人이 기록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한글제정당시의 한글을 기재한阿彌陀經諺解(아마타경언해)’를 참고로 한 것으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이들은 이와는 별도로"당시 일본세계관으로는 아시아라고 할 때 보통日本,中國,印度를 아시아3국으로 보는 게 통념 이었으나大巖院을 개산한 오요 레이간(雄譽靈巖)주지가 특히 조선과 우호적인 관계를 갖고 있었던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비석에 조선을 포함시켜 네 나라 백성들의 왕생을 원했던 것으로 같다"고 해석하고 있다.

 

大巖院사찰이 창건된1624년에는3차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日本을 방문했다.四面石塔과 보소반도를 통신사 교환과 직접 관련시킬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四面石塔에 한글이 새겨져 있는 사실은 당시朝鮮江戶幕府사이에 긴밀한 우호관계가 유지되었음을 입증하는 근거로 추정된다.다테야마(館山)는 당시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지역교재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日本歷史교육자협의회에 보고했으며2002년엔 한일역사교육실천연구회의 지원을 받아 관계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역사교육심포지움을 열었고 이어2004년에는韓日어린이교류모임을 갖는 등 다양한韓日교류사업에 활용하고 있다.大巖院을 개산한 오요 레이간의 전기(傳記)에는"1636년과1683년 두 차례에 걸쳐朝鮮通信使大院巖에 들렀다"고 기록돼있다.법당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둘러보다 함께 간 친구가 주지를 불러와10여 분 정도 사찰역사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한가지 특이한 점은 사찰 사면벽의 반 정도가 선명한 색채불화가 그려진 스테인드 글라스란 점이었다.日本에서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사찰은大巖院한 곳 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찰을 나와 시간이 좀 일렀지만 점심을 끝내고 다음 행선지인 북쪽의 기사라즈(木更津)로 올라갔다.기사라즈는 보소반도 서쪽東京灣에 접한 교통의 요충지이다.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오다야마공원(大田山公園)에 있는 긴레이쓰카유물박물관(金鈴塚遺物博物館)을 보기 위해서였다.이 박물관에는 금귀걸이와 대도(大刀),新羅土器인 스에키(須惠器)와 여러가지 모양의 토용(土俑),그리고韓國이 원조인 동탁(銅鐸)등이 전시돼 있었다.한갓진 지방의 작은 박물관이1만여년 전에서20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적잖은 유물을 시대별로 질서있게 전시하고 있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전시품 중 고대유물은 대부분 기사라즈시 동북쪽에 있는 시바야마고분군(芝山古墳群)에서 출토된 것으로慶州금령총고분 유물과 동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이는 당시日本으로 건너간新羅人들이 가져갔거나 이주 후日本에서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손잡이 끝을 둥근 원으로 만들고 그 안에 용이나 기타 상서로운 동물의 이미지를 조각한 환두대도(還頭大刀)日本古代가요집인 만요슈(万葉集)에서 고려검(高麗劍)이라고 전하고 있는名劍이다.

 

지금의 보소반도는 고대 율령제 시대에 아와국(安房國),가즈사국(上總國),그리고 시모우사국(下總國)등 세 나라가 존재했던 곳이며 보소(房總)란 명칭도 이 세나라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보소반도는 에도막부시대 도읍인 에도에서 가까운 거리이었지만 동서 양쪽의 바다에 면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중앙지역이 대부분 산지이기 때문에 생산물이 부족해 주민이 많지 않아 그다지주목을 받지 못했다.지금은 반도 서쪽의東京灣쪽 해안지대에 철강과 석유화학공업 및 화력발전을 중심으로 한 게이요(京葉)임해공업지대가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으며 연안어업과 원예작물업도 주민소득증대에 기여하고 있다.반도 동부 태평양 연안엔‘99()해변으로 불리는66km길이의 해수욕장이 유명하다.이 모래벌은 일본의 백사청송(白砂靑松)100선에 올라있다.반도의 남부는 구릉이 넓게 펼쳐져 풍광이 빼어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돼있다.보소반도는 어디든 사람들이 느리게 사는 곳이었다.모처럼만에 한 세대 이전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한 하루를 보냈다. <>

20051워르權泰鳴, 2026-05-30再作成,서울商大58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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