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歷史를 알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 江戶時代의 參勤交代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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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장시 작성일25-10-11 17:02 조회66회 댓글0건본문
日本歷史에서 우리가 알아서 좋을 것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參勤交代制라는 것이다. 織田信長과 豊臣秀吉의 뒤, 天下統一의 偉業을 完成한 것은 다 알다시피 德川家康이다. 家康은 信長과 對等한 東海地方의 大名(→daimyo=封建領主)였으나, 信長의 死後, 그의 武將이었던 秀吉을 追從하여 北條(hojo)를 멸망케 한 후, 秀吉로부터 關東의 250万石의 넓은 領地를 받고 江戶(=edo=明治維新後, 지금의 東京 1868年 改名)으로 옮긴다.
秀吉의 死後, 1600年에, 家康은 天下를 놓고 싸운 저 유명한 『關ガ原[sekigahara]合戰』에서 秀吉아들(秀賴)의 武將인 石田三成을 물리치고, 全國支配의 實權을 쥔다. 1603年에는 家康은 征夷大將軍에 임명되고, 江戶幕府를 이끌었다. 그리고 결국은 秀吉의 아들 秀賴와 2번에 걸친 大阪城攻略끝에 1615년에, 豊臣氏를 멸망케 한다.
여기서, 家康은 子子孫孫의 千代를 설계한다. 3代將軍, 家光(iemitsu)때인 1615年, 將軍은 全國各地에 400万石以上의 領地(天領)을 갖고, 江戶 京都 大阪을 비롯, 중요한 都市 港, 鑛山을 지배한다. 幕府는 휘하의 家臣들이 가진 땅까지 합쳐 全國石高의 4분의1을 支配한다. 將軍으로부터 1万石以上의 領地를 받은 者를 大名이라고 부르고, 大名이 領地와 家臣을 다스리는 체제를 藩(→封建國)이라고 불렀다. 藩의 數는 약 260個있었다. 藩은 獨立해서 政治를 했다. 이와 같이 幕府와 諸藩이 全體로서 政治權力을 만들어 내어, 土地와 人民을 지배하는 system을 『幕藩體制』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1867年의 明治維新까지는 이런 체제가 계속된다. 日本歷史는 1600年~1867年을 267年間 15代의 德川幕府時代라고 記錄하고 있다. 幕府는 大名을 통제하기 위해, 1615년(家光때)에 武家諸法度라는 法을 만든다. 이 法을 어기면 領地沒收등의 벌을 내렸다. 그리고, 大名을 3종류로 나누어 mosaic모양으로 分散任命해서 다스렸다.
德川家의 親戚을 大名으로 앉힌 경우는 1)親藩(shimppan), 그리고 代代로의 家臣은 2)譜代(fudai), 그리고 『關ガ原合戰』때에 秀賴軍 또는 家康軍의 어느 쪽에도 가담을 하지 않은 中立的인 大名中에서 골라서 3)外樣(tosama→바깟쪽의 사람의 뜻)라고 부르고, 특히 이들 外樣은 江戶로부터 가급적 먼 곳에 領地를 주어서 멀리 묶어 놓았다.
이들 3종류의 大名은 수시로 幕府가 人事移動을 해서 자리바꿈, 즉 東에서 西로, 西에서 北으로등 옮기게 하고, 領地도 줄였다 늘렸다를 했고, 또 쑥떡베옷마냥으로 親藩옆에는 外樣을, 外樣옆에는 譜代를 배치해서 相互監視토록했고 分散配置해서 절대로 幕府에 대항해서 뭉치지 못하게 철저히 통제를 했다.
이렇게 해 놓고도 安心할 수 없었던 家光은, 1635년에, 『參勤交代制(sankinkotaise)』를 定하고, 大名을 1년마다, 江戶와 領地에서 번갈아 살게 하고, 妻子는 江戶에 人質로 두도록 했다. 大名은 1년마다 江戶를 義務的으로 오고가고를 232년간 계속했다. 이것이 後日, 오늘날의 日本을 當時에 開化쪽으로 指向케 해서 各種情報등을 全國的으로 균일하게 알도록 만든 日本同質化作業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日本을 알려면 반드시 歷史의 뿌리가 깊은 參勤交代制를 알아야, 日本을 理解하기 쉬워진다.
이렇게 해서 德川幕府는, 東京의 江戶城의 원래의 이름을 千代田城(chiyodajo)이라고 命名해서 幕府를 千代(→日本은 萬代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그 대신 千代 또는 千歲등의 千字를 더 많이 쓴다)까지 해먹자!는 設計圖를 그려 놓았던 것이다.
지금도, 東京의 가장 心臟部, 江戶城周圍付近을 1947년부터는 千代田區(Chiyodaku)라고 命名해서 부른다. 특히, 皇居(→日本에서는 皇宮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가 있는 곳, 銀座(Ginza), 日比谷(Hibiya), 丸의 內(Marunouchi)등은 모두 千代田區에 포함되어 있다. 幕府가 남긴 말이 東京의 地名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東京에 가서 보면, 德川幕府時代의 參勤交代制下에 當時의 江戶에 머물기 위해 만든 大名居所중에는, 金澤(Kanazawa)出身의 前田(Maeda)家가 지금의 東京大學으로서 자리잡고 있고, 그리고 赤坂(Akasaka)의 New Otani Hotel은 당시의 大谷家의 居所였던 곳이다. 모두 過去 幕府와 參勤交代制의 빛바랜 面影이나 흔적이라고나 할까? 歷史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2006-02-08 최초작성
2025-10-11, 오후 16:22 최정규 16回 作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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