己卯生 세 친구의 일본 山行: 권태명(경제학과 5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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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24-12-08 18:25 조회149회 댓글1건본문
[己卯生 세 친구의 일본 山行]
권태명(경제학과 58학번)
“白根山頂上 2,578m” 라는 정상표지 흰 나무말뚝이 서있는 펑퍼짐한 바위 위에 셋은 가뿐 숨을 몰아 “야, 카메라 꺼내” 앉자마자 유노상이 서둘렀다. 그러나 카메라는 아무도 갖고있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우리 보다 한 걸음 먼저 올라와 맞은 편에 앉아있던 70 중반쯤의 노인이 손 때로 윤이 반짝 이는 멍텅구리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저 노인에게 한 장 부탁하자”는 유노상의 제의에 노인 에게로 가 정중하게 부탁했다.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잡은 노인은 정상표지 말뚝을 배경으로 거의 눕듯 비스듬히 앉은 우리 셋을 향해 셔터를 눌러주었다. 그 것도 확인을 위해 두 번씩이나. 석 장을 뽑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주소를 적은 쪽지와 2000엔을 내 놓았더니 너무 많다며 1000엔만 받았다.
실은 이 노인을 등산 도중 중턱에서 잠깐 쉴 때 몇 마디 얘기를 나누었던 터라 부탁이 쉽게 이루어진 듯 싶었다. 나라(奈良)에서 왔다는 자그마한 체구에 점 잖은 인상의 이 노인은 50년 넘게 등산을 계속해 오고 있다고 했다. 일흔 넘은 노인이 그 것도 혼자서 이런 험한 산을 오르다니, 그 건강과 결심이 정말 부러웠다. 9월 9일 아침 7시30분 일찍 출국수속을 마친 우리는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에서 한 시간 남짓 휴식을 취한 후 10시에 출발, 11시 40분 일본 나리따(成田)공항에 도착했다. 등산달인 유병인과 몇 달 전부터 얘기 해 오던 이번 산행 에는 나중에 유노상이 합류해 셋은 국민학교 시절 소풍 가듯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12시께 나리따 공항을 나와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면서 다섯 시간을 달려 저녁시간에 알맞게 맞추어 예약한 여관에 닿았다. 북 관동지방에서 이름난 닛꼬유모또(日光湯元) 온천마을. 우리가 든 가마야(釜屋)여관은 명치 원년인 1868년 창업이래 쉬지 않고 130여년 간 이어 온 일본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여관으로 숯처럼 검게 변한 외벽 색갈이 연륜의 권위를 말해주는 듯 했다.
짐을 풀기가 무섭게 우리는 온천으로 직행했다. 쌀뜨물처럼 희 뿌연 유황 물에 몸을 담그니 온종일 쌓인 피로가 한 순간에 말끔히 가시는 듯 기분이 좋았다. 산채와 생선을 중심으로 한 20여 가지 전통일본요리의 저녁상은 먹기보다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일본사람들의 밥상은 예로부터 1汁 3菜가 표준이라고 하나 온천장은 여기에서 예외다. 좀 과장해서 상다리가 휠 정도로 가지 수가 많다. 평소 집에서 잘 못 먹는 사람들이 모처럼 쉬러 왔으니 실컷 먹고 즐기라는 의미에서 일 까.
다음 날 출발시간을 6시 반으로 하고 등산장비를 정리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유병인의 코 골음이 여전했지만 그 동안 태백산, 지리산등지를 동행 하면서 익숙해진 터라 아침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식사를 못하고 대신 여관에서 특별히 마련해 준 주먹 밥 두 개와 자판기에서 뽑은 물 한 병 씩을 배낭에 넣고 전 날 예약해 둔 택시로 산 입구까지 갔다. 여관에서 산 발 치의 스가누마(菅沼)등산로 입구까지 거리는 8km정도. 상큼한 산 속 아침공기가 머리 속까지 맑게 해 준다. 비염 알레르기가 있다는 유노상은 코가 금방 뻥 뚫렸다 면서 이 기분을 누가 알겠는가 고 아이처럼 좋아한다.
일본국립공원1호인 닛꼬(日光)국립공원에 속해있는 시라네산(白根山)은 높이가 해발 2,578m로 북관동의 도찌기현과 군마현에 걸쳐있는 이 지역 화산 군의 최고봉이다. 정식이름은 “시라네산” 이지만 군마현의 쿠사츠 시라네산 과 구별하기 위해 닛꼬시라네산(日光白根山) 또는 오꾸시라네산(奧白根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화산침식이 심해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등산애호가 들이 선호하는 산이며 아래에서 산의 전 모습을 볼 수 없어 쉬운 듯이 보이나 올라갈수록 어려워지는 산이다. 이 산을 ‘일본 백 명산(日本百名山)에 넣으면서 등산 작가인 후까다 규야는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 산들보다 한층 높게 솟아있어 그 위용에 놀라게 된다,” 라고 쓰고있다.
시라네산에는 시라네 엉겅퀴, 시라네 인삼 그리고 시라네 고사리 등 산 이름을 붙인 식물이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일대는 식물연구의 중요장소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일본고유종인 이 곳의 시라네 접시꽃은 에도(江戶)시대 후기에 간행된 ‘日光山志’에 赤紫色의 청초한 꽃이라고 기록될 정도로 이름이 나 있는 꽃이다.
입구에서 20여분 정도는 완만한 코스이나 금방 지그재그의 급 경사 길로 바뀌어 호흡이 빨라졌다. 흑목(黑木) 가파른 좁은 길을 기어가 듯 두 시간 가까이 오르자 잠깐 평지가 되면서 자그마한 호수가 나타났다. 미타호(彌陀湖)이다. 2,300여m 높이에 쪽 빛 파란 물을 담은 호수가 헐떡 이며 올라가는 등산객 들의 땀을 씻어준다.
호수가 길 옆에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어 길게 만들어 놓은 벤치에 앉아 숨을 돌렸다. 주중 인데다 힘든 코스라서 일까 오가는 사람이 뜸하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어 준 노인을 이 곳에서 만났다. 호수에서 처다 본 정상은 마치 구름 위에 수직으로 솟아오른 절벽 같다. 먼저 떠난 노인이 벌써 중허리 쯤에 올라있다. 잠깐 내리막이던 길은 나나이로다이라(七色平)분기점에서 부터 급상승으로 바뀐다. 정상까지 1.1km에 한 시간 걸린다고 나무판에 씌어있다. 숨이 차 잠깐 씩 서는 회수가 늘어갔다. 우리가 오르던 날은 안개 같은 엷은 구름이 산 허리를 내내 휘감고 있는 바람에 아래쪽 절경을 충분히 즐길 수 없는 게 아쉬웠으나 그 대신 덥지않아 좋았다.
2,000여m 준봉에 둘러 싸인 五色湖水의 코발트 빛깔이 잠깐 걷힌 안개 구름 사이로 한층 짙게 보이고 저 멀리 산 발치에 펼쳐진 스가누마(菅沼), 마루누마(丸沼)의 넓은 호수면이 늦여름 햇살에 쓰러진 채 그대로인 원시림이 여기저기 길을 막아 진행이 더딘데다 기압강하로 머리가 띵하고 현기증이 느껴져 잠깐 씩 서는 회수가 늘어갔다. 오르막이 더 쉽다는 유병인도 걸음이 더뎌지고 호흡이 빨라졌다. 당분보충을 위해 배낭을 열었더니 초콜릿 포장이 마치 바람 넣은 개구리 배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있다.
맑은 날이면 군마현 과 도찌기현의 사방 360도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정상이라는 데 할 수없이 정상표지나무말뚝을 배경으로 한 기념사진 한 장으로 만족해야 했다.
산을 내려 와 유노상이 실토한 얘기. 유병인과 내가 앞장 서 올라가면서 구름 때문에 아래 경치를 볼 수 없는 게 아쉽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기는 경치감상은 고사하고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을 판인데 저 작자들 배부른 소리 하는구나 싶더라 는 것이었다. 하산 즉시 입구휴게소식당에서 국수와 먹다 남긴 주먹밥으로 점심을 때운 후 따뜻한 온천 탕에 푹 빠져 피로를 풀었다.
2002. 9. 13
後記:
귀국 후 한 달 조금 지나 일본에서 우편물이 왔다. 금방 그 노인에게서 구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늦어도 보름 쯤이면 오리라 예상했던 우편물이 한 달이 다 되도록 오지않길래 잊어버리고 있던 참이라 새삼 반가운 생각이 들어 얼른 뜯었다. 노인의 성함은 스기야마(杉山)였다. 달필의 편지 한 장과 함께 사진을 여섯장이나 보내왔다. 우리를 찍은 석 장외에 정상에서 몇 장면을 촬영, 파노라마로 길게 연결한 멋진 경치 사진 이었다.
사진이 늦어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일부러 먼 길을 오셨는데 불행하게도 구름이 끼어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지 못하고 가시게 되어 몹시 아쉬운 생각이 들어 우리가 내려 간 뒤 정상에 계속 머물면서 구름이 걷히기 를 기다려 아주 깨끗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은 몇 장면을 촬영하여 보내 드리니 사진으로 나마 감상하시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좋은 날을 잡아 일본 알프스의 장엄한 봉우리를 정복하는 즐거움을 갖기 바란다고 덧 붙였다.
편지도 볼 펜이 아닌 철 필로 쓴 것이었다. 고마운 생각에 나도 쓰지않던 만년필을 꺼내 줄 쳐진 한지 에다 정중한 단어를 골라 縱書로 쓴 答信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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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ko 시라네산 (2,578m) 정상에서 기묘생 권테명, 유노상, 유병인 3건각 들의 젊고 활기찬 모습들 참으로 보기 좋고 자랑스럽습니다. 일본 노인이 찍어주어 1,000엔을 지급하고 받은 사진임이 퍽 인상적이군요. 나는 일본장기신용은행 연수프로그램에 참석하여 사철로 Nikko Shrine가서 조선종을 보았고 일본의 역사 탐방을 잠시 했던 기억만 있지 감히 등산은 엄두도 못 내겠군요.일본 Alps는 bus편으로 거의 다 올라가 약간 만 걸어 보았을 정도. 지금은 하기 어려운 모험을 감행 하였던 3총사 산악인 축하드립니다.
이선호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