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3월4일 [隨筆] 지난 歲月三千年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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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장시 작성일26-03-04 09:29 조회25회 댓글0건본문
2026년3월4일 [隨筆] 지난 歲月三千年을 되돌아본다
◆옛날은 얼마나 오랜 세월이었으며,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요새,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변하니, 뒤쫓아 가기 어렵다. 그야말로 電光石火다. 그래도,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AI다. AI는 바로 萬物博士다. 무엇이든지 여기다가 물어보면, 거의 정확한 答, 知識 또는 情報를 얻을 수 있다. 앞으로는, AI를 利用할 줄 모르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全世界가 AI 때문에, 새로이 없어진 직업이나 일자리가 점차 많아진다고 걱정이 많다. 筆者가 오늘 쓴 아래의 글은, AI의 도움을 크게 받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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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온 歲月을, 그리고 그 歲月속에서 일어난 일을 記錄한 것을, 우리는 歷史라고 한다. 人間의 歷史를 되돌아보면, 글자가 창조되어, 成文의 歷史가 記錄된 것을, 우리는 진짜 歷史라고 해서, 되돌아보고 배우고 앞날을 豫測設計해 나간다. 그러나, 成文의 歷史는 3000년을 넘지 못한다. 이런 것이, 결국은 우리 人類가 살아온 人生全部이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온 歷史를 살펴보면, 대략 아래와 같은 사실을 발견한다:
①釋迦牟尼는, BC628~BC524=80歲, 다시 말해, 지금부터 2,600余年前 사람이다.
②孔子는, BC551~BC479=72歲. 다시 말해, 지금부터 2,550余年前 사람이다.
③예수님은, BC6~AD30=36歲, 다시 말해, 지금부터 2,032年前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宗敎를 만들어 敬慕, 尊敬, 崇拜한다. 사람들은 2000년이 넘는 옛날을 매우 아득한 옛날이라고 생각하고, 매우 긴 세월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人生이 100年이라고 한다면, 2000年 3000年은, 20배 30배이니까, 2자리 倍數에 지나지 않는다. 세자리 네자리 倍數가 아니지 않느냐? 즉, 30,000년, 100,000년은 아니란 말이다. 그다지 오랜 세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져 그냥 그런 세월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3000年 5000年도 億劫에 비하면, 刹那가 아니냐? 별것 아니다. 비교하기에, 생각하기에 달렸다. 筆者는, 오늘 中國歷史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漢字를 起源을 살펴본다.

秦(BC905年~BC206年)은, 中國의 古代王朝이다. 우리가 中國을 말할 때, 가장 자주 쓰는 말이 秦始皇이다. 始皇帝라고도 부른다. 秦始皇은, 秦나라의 첫번째 王으로서, 皇帝에 오른 사람이 아니다. 始皇帝는, 古代中國의 戰國時代의 秦의 第31代君主(在位:BC247年~BC210年=37년)였다. 위 在位기간중, 最終11년간은, 皇帝로 卽位하여 中國의 初代皇帝(在位:BC221年~BC210年=11年)가 된 사람이다. 始皇帝(BC259年~BC210年)는, 秦王에 卽位한 後, 勢力을 擴大해서 他의 諸國을 차례차례 攻滅하고, BC221年에 中國史上初로 天下統一을 이루워낸 皇帝다. 그것을 始作으로 「始皇帝」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中國歷史上 初代皇帝(在位:BC221年~BC210年)가 된 사람이었다. 秦王이, 처음으로 皇帝라는 칭호를 사용한 사람을 말한다. 秦(BC905年~BC206年)은, 中國의 古代王朝로서, 周代•春秋時代•戰國時代에 걸쳐서 存在했고, BC221年에 史上初로 中國全土를 統一, BC206年에 11년만에 滅亡했다. 統一로부터 滅亡까지의 期間을 秦朝, 秦代라고 부른다. 中國初의 統一王朝였던 秦王朝가 BC206年에 滅亡하고, 곧 漢나라가 세워진다.
◆이러한 가운데, 漢의 劉邦이 BC202年에 項羽를 무찌르고 中國을, 秦始皇에 이어 再統一했다. 中國을 統一한 劉邦은, 皇帝로서 卽位함에 있어서 舊來의 國號였던 漢을 그대로 統一王朝의 國號로서 使用했다. 이때 劉邦이 開國한 漢과, 일단 滅亡한 후에 劉秀에 의해서 再興된 後漢의 漢王朝는, 합해서 400年間 오래 걸쳤다. 中國初의 統一王朝는 秦王朝였으나 短命으로 滅亡하였고, 中國의 統一狀態를 實質的으로 確定한 王朝는 直後의 漢王朝라고 보고 있다. 이때부터 中國全土와 中國의 主要民族을 가리키는 名稱으로서 「漢」이 使用되도록 되었다.
◆漢나라는, 前漢과 後漢으로 나뉘어, 합치면 409年間 계속된 中國의 王朝다. 前漢(BC206年~紀元後8年=214年)은, 中國의 王朝다. 西漢이라고도 부른다. 秦이 滅亡後의 楚漢戰爭(項羽와의 싸움)에서 勝利한 劉邦(在位7년)에 의해서 建國되었고, 長安을 都邑으로 했다. 7代 武帝(帝位54年)時에 全盛期를 맞이해, 匈奴討伐등으로 前漢의 最大版圖를 構築했다. 그 勢力은 北은 外蒙古, 南은 Vietnam, 東은 朝鮮, 西는 敦煌까지 미쳤으나, 孺子時에 重臣의 王莽에 의해 簒奪당해 一旦은 滅亡한다. 그 後, 漢朝의 傍系皇族인 劉秀(光武帝)에 의해 再興된다. 前漢에 대해서 이쪽을 後漢이라고 부른다.
中國에서는 前漢과 後漢을 합쳐서 兩漢이리고 總稱되기도 한다. 漢이라는 固有名詞는 元來는 長江의 支流인 漢水에서 由來하는 名稱이었고, 本來는 劉邦이 그의 根據地로서 漢中이라는 一地方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劉邦이 天下統一한 支配가 400(214+195=409)年에 미치기 때문에, 中國全土, 中國人, 中國文化 그 自體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漢字라함은, 漢나라때 漢 나라 사람들이 使用한 文字를 말한다. 漢나라 때에 漢나라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보다 300년 앞선, 孔子때, 『論語』라는 책이 나왔다. 단순히, 그 시절에, 漢나라 사람들이 쓰던 文字일뿐이다. 漢字의 「漢」은, 漢民族이 使用하는 文字라는 意味이며, 漢王朝의 이름은 아니다. 現在, 中國語를「漢語」, 漢民族이 使用하는 文字를「漢字」라고 부른다. 이 漢字는 東洋3國, 韓國, 中國, 日本에서 공통적으로 過去歷史속에서, 國語化 使用되었다. 漢字가 없으면, 기록을 할 수가 없었다.
◆漢字에 대해, 그 起源을 알아보았다.
漢字의 起源은 約3300年前, 中國의 殷王朝에서 使用된 甲骨文字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이것은 BC1300年頃을 말한다. 漢字의 誕生은, BC1300年頃:中國의 殷王朝에서 甲骨文字가 使用되었다. 거북의 甲羅와 짐승의 骨에, 占術의 結果등을 새겨넣은 文字가 있었다. 象形文字와 같은 繪畵的인 要素를 가지면서도, 漢字의 基本的인 構造가 이미 存在했었다. 甲骨文字의 다음으로 靑銅器에 鑄入된 金文으로 發展했고, 그 後, 篆書, 隷書, 楷書로 變化해나갔다.

◆中國의 漢나라를 말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司馬遷이다.
司馬遷(BC145~BC86=享年60歲), 中國, 前漢時代의 歷史家이며, 『史記』의 著者이다. 太初曆의 制定과, 通史『史記』의 執筆등의 業績이 있다. 司馬遷의 家系는 堯舜의 時代에 功績을 세워, 代代로 歷史와 天文을 담당하는 一族이라고 한다. 이와같은 家系에서, 父, 司馬談도 여러 가지 師로부터 天文;易學, 道論등의 가르침을 받고, 漢王朝를 섬기면서, 司馬遷때부터 約30年間에 걸쳐서 太史令의 官職을 得하였다.
中國 漢武帝 때 太史令을 지낸 司馬遷(BC145~BC86=60歲)은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宮刑을 당하면서까지 죽지 않고 역사의 서술로 불멸의 저서 <史記>를 남겼다. 九牛一毛는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 박힌 하나의 털이라는 뜻, 아주 많은 것 가운데 극히 적은 수를 비유하는 四字成語다. 司馬遷은 『史記』 집필중 宮刑을 당하면서도, 司馬遷은, “설령 내가 복종해 죽임을 당할지라도 九牛一毛에서 한 개의 터럭을 잃는 것과 같다”고 했다. 司馬遷은 『史記』外에 二十四史를 써서 남겼다. 또한 「太史公自序」에서, 約130篇536,500字의 『史記』를 名山에 貯藏하고, 副本을 京師에 두었다고 한다. 『史記』가 完成한 것은 BC90年이며, 字數를 記하고, 本書와 寫本에만 쓰고 筆을 거두었다. 文字밖에 없었던 時代에, 司馬遷이 남긴 歷史책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그 時代의 歷史를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BC인 BC145~BC86에 살다간 司馬遷은 예수님보다도 100年以上 먼저 살다간 사람이다. 그당시, 종이나 붓이 제대로 있기 어렵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던 그 옛날 史記라는 名著를 남긴 것,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中國語의 文字數, 過去와 現在
古來부터 使用되고 있는 漢字의 數는, 正確한 數는 不明이지만, 100,000万字以上은 確實하다. 中國語辭書에 記錄되어있는 最大의 漢字數는, 台灣敎育部의 2004年版『漢字異體字典』은 106,230, 이러한 文字의 가운데, 一部만이 現在에도 日常的으로 使用되고 있다. 2013年에 中國政府는, 가장 重要한 3,500文字 現代中國語에서 使用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中國의 小學生은 最低라도 3,500語 모두를 배울 것을 要求받고 있으나, 卒業時에는 5,000語, 6,000語, 혹은 그以上의 語를 習得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中國의 非Native向 中國語能力檢定試驗HSK의 最高Level에 合格하기 위해서는, 2,663個의 漢字를 외울 必要가 있다고 한다. 數千年前에 骨片으로 써진 文字로부터 今日의 Smartphone에 入力하는 文字까지, 그 量과 表語形漢字는 時間의 經過와 더불어 進化하고, 지금도 進化를 계속하고 있다.
◆ 中國公式使用漢字數?
中國政府가 定하는 公式基準으로는, 基本的인 敎育과 文化를 充足시킨다고 定해져있는 漢字가 3,500字이다. 日本과 中國, 각각 漢字의 種類는 다르지만, 實은 中國語의 常用漢字3,500個의 가운데, 日本語의 漢字와 같은 文字가 1013個나 있다. 日本人이 배우기에 壓倒的으로 有利한 外國語라고 할 수 있다. 初心者일지라도 日本人이라면, 이미 많은 中國語를 알고 있는 것이다.
◆日本으로의 漢字傳來는, 紀元後1世紀頃:日本列島로 漢字가 새겨진 中國의 貨幣가 發見되었다. 그러나, 이 時点에서는 漢字가 文字로서 認識되고있었는가는 不明. 4世紀末頃:朝鮮半島를 經由해서 漢字가 日本으로 傳來했고, 西紀405년, 百濟의 王仁博士가 「千字文」과 「論語」를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7世紀初:遣唐使에 의해, 漢字를 通한 中國文化의 吸收가 推進되었다. 6世紀때 日本 獨自의 發展으로 일본은 漢字를 分解해서 조각들을 늘어놓고, 조각들로 日本의 글자, 50音表를 만들었다. 日本으로 전해진 漢字는 獨自의 發展을 이뤄내서, ひらがな(平假名)과 カタカナ(片假名)이 생겨난다. 日本의 當用漢字의 公式數는 1850字이다. 當用漢字는, 第二次世界大戰後의 1946年에 內閣이 告示하였다. 이것은, 公文書나 出版物등에서 使用하는 漢字의 基準으로서 定해졌고, 「우선 사용한다」는 意味가 포함되어있다. 當用漢字는, 1981년, 常用漢字表가 告示되므로서 廢止되었다. 當用漢字는, 現代의 常用漢字의 前身이다. 常用漢字는 2136字이며. 2010年에 改定되었다.
◆우리나라는, 古來로 文字가 漢字밖에 없었다. 世宗大王의 1446년 한글창제시까지의 모든 歷史는 漢字로만 기록해왔고, 公職試驗도 漢字로만 해왔다. 金富軾이 쓴 三國史記는 1145년, 이보다 136年後, 僧一然이 쓴 三國遺事는 1281년이었고, 모두 漢字로 쓴 것이었다. 우리는 이렇듯, 과거에 써왔던 漢字는, 우리역사이며, 이런 漢字는, 남의 글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몸둥아리, 우리의 글자였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어찌하고 있는가? 모든 간판은 한글로만 써져있고, 각 지방의 地名도 한글로만 표기하고 있다. 漢字를 내버리고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교육용 기초한자: 교육부에서 정한 기초한자 1,800자를 기준으로 한다. 보통 중학교에서 900자, 고등학교에서 추가로 900자를 익히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교과서 표기: 현재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한자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경우 어려운 용어 옆에 괄호로 한자를 병기(예: 광합성(光合成))하여 이해를 돕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漢字교육은 현재 의무교육(필수)은 아니지만, 중·고등학교에서 선택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요새 젊은이들은, 특히 60歲以下 國民大多數는 漢字를 모른다. 1000자밖에 안되는 古來로 써왔던 漢字를 이제는 완전히 버렸다. 東洋3國, 中國, 日本, 韓國중에서 우리만, 漢字를 外面, 敎育도 안 시키고, 公文書에도 사용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新聞放送을 보라! 漢字를 거의 발견할 수 없지 않느냐? 이런 세월, 50년만 더 흘러가면, 우리들은 완전히 漢字無知國民으로서, 3國에서 외톨이가 될 것이다. 참으로 슬프고 슬픈 일이다.
◆ 漢字敎育의 問題点
한자교육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미래에 미칠 영향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하지 않을수 없다. 특히 주변국과의 관계나 역사적 단절에 대한 우려는 많은 학자와 시민들이 공감하는 중요한 Point이다.
1) 歷史的 斷絶과 文解力 문제
우리나라 역사 기록의 대부분이 한자로 되어 있다는 점은 가장 큰 해결과제이다. 古典 번역 전문가가 줄어들면,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기록을 스스로 해석하지 못하고 누군가 번역해 놓은 '2차 자료'에만 의존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는 역사 해석의 왜곡을 낳을 수 있다.
2) 語彙力의 限界: 韓國語 단어의 약 70%가 漢字語이기 때문에, 漢字를 모르면 단어의 정확한 개념(속뜻)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는 전반적인 문해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3) 東아시아 文化圈에서의 위치 (中國·日本과의 관계)
漢字는 수천년 동안 東아시아의 '共用語' 역할을 해왔다. 문화적 연대감: 漢字를 共有할 때 가졌던 문화적 유대감이 약해질 수 있다. 地名, 人名, 古典 文句 등을 共有하지 못하면 정서적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
4) 실용적 측면: 다만, 現代의 韓·中·日 관계는 경제, 기술, 대중문화(K-Pop 등)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漢字를 모른다면 외톨이가 될 수 있다.
기도 했다.
5) 結論的으로 漢字敎育이 弱化되면 過去와의 연결고리가 헐거워지고 끊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의무교육을 채택, 핵심적인 한자교육에 대한 국가적 투자는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漢字에 담긴 '정신'과 '개념'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노력, 다시 말해, 漢字敎育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絶對必須的이라고 確信한다. 100년도 못사는 人生, 漢字 敎育正常化回復에 最善을 다하자!<終> 2026-03-04 jgchoi作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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