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日戰爭과 迎恩門, 그리고 台灣協會와 서울商大設立沿革---[2025년11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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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장시 작성일25-11-30 17:07 조회49회 댓글2건본문
淸日戰爭과 迎恩門, 그리고 台灣協會와 서울商大設立沿革---[2025년11월30일]
우리나라등 주변의 歷史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東學亂은 1893~94에 일어난 全羅道와 一部慶尙道의 농민반란이었다. 筆者가 中高校시절 배운 것은 東學亂이었다. 최근, 인터넷검색으로 이 사건을 살펴보니, 東學亂은 朝鮮王朝시대의 史觀이라하여, 그다지 쓰지 않고, 東學農民運動도는 農民革命이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대에 따라 역사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우리가 東學亂을 重視하는 것은, 이것이 단초가 되어, 朝鮮王朝말기에 淸國軍과 日本軍이 韓半島에 들어와 朝鮮의 支配權을 놓고 충돌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곧 淸日戰爭(1894년7월~1895년3월)이 일어난다. 日本이 재빨리 강화도 앞바다와 遼東반도앞 旅順근해에서 淸國海軍軍艦을擊沈, 無力化시킨다. 淸國과 日本은 1895년3월 下關(Shimonoseki)에서 강화조약을 맺는다. 下關條約第1條는, 淸國은 朝鮮國이 完全無欠한 獨立自主의 國임을 確認한다라고 규정한다. 이 때문에, 西大門밖의 迎恩門이 헐리고 獨立門이 세워지게 된다. 伊藤博文全權이 起草∙調印한 이 條約에 의해서 李氏朝鮮은 淸의 冊封体制로부터 離脫하여 大韓帝國이 되고, 第26代의 高宗이 中國皇帝의 臣下를 意味하는「國王」의 稱號를 廢하고, 처음으로 皇帝라고 稱하게 되었다.


淸國은 막대한 戰爭賠償金(當時3억6,451만円-2015년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約50億弗)을 日本에 물어준다. 그리고 遼東半島・台湾・澎湖諸島를 割譲한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반대하자, 遼東半島만은 곧 되돌려준다. 그리고 台湾・澎湖諸島는 2차대전후 반환한다.
여기서부터, 서울商大의 前身인 京城高等商業學校開校와 관계가 있는 일이 벌어진다. 日本은, 台灣을 식민지배할 준비를 서두른다. 그 기초작업으로서, 요새말로 하자면 Think-Tank를 만든다. ‘台灣協會’라는 단체를 1898년 東京에 만든다. 台灣을 殖民支配하기 위한 作業과 人才養成을 위한 학교 (台灣協會專門學校)까지 설립한다.
1998년 台灣政府의 文化部가 主管編纂한 '台灣大百科全書'(Encyclopedia of Taiwan)에 의하면, 台灣協會를 아래와 같이 해설하고 있다.
◆台灣協會<最終修正日: 1998年9月9日>
日本政界與財界人士爲配合官方殖民政策而組織的團體. 1898年4月2日成立於東京,其規約中言明是爲協助政府經營殖民地台灣. 協會之會頭與評議會幹事分別由桂太郞, 水野遵出任,在日本各地與台灣設有支部, 同年10月發行機關誌改爲≪台灣協會會報≫, 進行宣傳與募款活動. 協會爲培養經營殖民地人才, 1900年出資設立台灣協會學校. 1905年日俄戰爭勝利後,隨著日本勢力之擴大. 1907年台灣協會改稱爲東洋協會, 機關誌改稱《東洋時報》,經營之學校也改稱東洋協會專門學校,亦卽現今之拓殖大學. 此外, 還有一個在1932年由台灣總督府支持成立之台灣協會.戰後, 從台灣被遣返的日本官民, 於1950年在東京又設立財團法人台灣協會, 該會存續至今.
要約하자면,日本政財界人士를 配合해서 殖民政策을 위한 조직적 단체로서 台灣協會를 1898년 東京에 설립한다. 台灣協會의 규약에는 台灣을 殖民地經營하는데 政府에게 협조하기 위함이다. 日本各地에 支部를 둔다. 殖民地經營을 위한 人才培養을 위해, 1900年에 台灣協會學校를 出資設立한다. 1907年에 東洋協會로 改稱한다. 經營學校를 東洋協會專門學校로改稱한다. 1950년에 東京에 財團法人台灣協會를 설립, 現在에 이르고 있다.
淸日戰爭으로 韓半島支配權을 확보한日本이, 1896년에 제일 먼저 행한 것은, 西大門밖의 迎恩門의 철거였다. 迎恩門은 1430년, 世宗때明나라 사신이 도착하는 것을 조선왕조가 환영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1895년 朝鮮이 독립국임을 下關條約으로 확인선언케한 日本은, 朝鮮이 淸國의 屬國이 아니라는 뜻으로 466년만에 철거한다. 그리고 곧 서재필등 독립협회가 1897년 그 옆에 獨立門을 세운다. 이제부터 朝鮮은 淸國의 屬國이 아닌 것이다.
그후, 1904년에 日露戰爭(1904년2월~1905년9월)이 일어난다. 여기서도 日本이 또,승리한다. 1905년, 美New Hampshire州Portsmouth에서 講和條約締結, Russia는, 韓國에서의 日本의 優越権의 인정, 関東州의 租借権및長春・旅順間의鉄道의 日本에게의 譲渡, 南樺太의 日本에게 割譲등을 決定한다. 日露戰爭의 승리를 거둔 후, 1905년日帝는 韓國에 대해 乙巳保護條約을 강제로 체결한다. 그리고 위 台灣協會를 韓國까지 포함시키기 위해, 東洋協會로 1907년 개칭한다. 東京에 설치한 台灣協會專門學校도 東洋協會專門學校로 개칭한다. 1907년 서울에는, 東洋協會專門學校京城分校를 설치한다. 여기서, 위 학교가 얼마후 京城高等商業學校로 1920년 개칭하였고, 1946년 서울大學校商科大學으로 개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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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설명을 더 간략히 정리하자면:
淸日戰爭勝利→迎恩門철거→台灣割讓→台灣協會創設→台灣協會專門學校開設→日露戰爭勝利→台灣協會를東洋協會로改稱→東洋協會專門學校京城分校開設→京城高等商業學校로改稱→서울大學校商科大學으로改稱~~~現在의 서울大經營大學에 이르게 된다.
◆<京城高商의 詳細說明>
서울商大의 前身인京城高等商業學校는, 1922년 當時 일본정부의 重商정책에 따라, 東京所在 台灣東洋協會의 京城分校로 開校하였다. 지금의 명륜동2가의 옛서울女醫專, 나중의 우석대학의 위치에 개교한 후, 거기서 1939년10월 종암동으로 校舍新築移轉하였다. 그러므로, 日帝의 侵略主義政策과 殖民地經營을 위한 人才養成機關으로 出帆한 台灣協會와 台灣協會專門學校가 서울商大의 出發原点이라는 사실이다. 日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學校라는 것이다.
◆한편, 日本의 Wikipedia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解說한다:
1907년에 台灣協會를 東洋協會로 개칭한다. 1922年3月, 日本統治下의 朝鮮에 設立된 舊制京城高等商業學校専門學校다. 通稱은「京城高商」. 京城高商의 前身은 東洋協会에 의해서 設立된 東洋協会専門學校京城分校이다. 이分校가本校로부터 独立해서 東洋協会京城専門學校, 다시 私立京城高商으로의 改組를 거쳐서 官立専門學校가 되었다. 朝鮮総督府의 所管學校였고, 本科가 設置되었다. 日本統治下의 朝鮮에 存在하고 専門學校의 中에서 唯一「內地人=日本人」教育을 내세우는 學校였다. 2次世界大戰中에 京城經濟専門學校(京城經専)으로 改稱되었다. 日本의 敗戰에 따른廃校의 後에, 韓國人에 의한 서울經濟専門學校로서 再発足하였고, 나중에 商科大學으로서 서울大學校의 一部에 組入되었고 (現:經營大學),現在에 이르고 있다.
◆<서울商大의 沿革>
1907年10月-京城府大和町一丁目24番地에「東洋協会専門學校(台灣協会學校의 後身校)京城分校」가 設立된다.
1915年8月-本校의 改稱에 따라「東洋協会植民専門學校京城分校」로改稱.
1916年6月-朝鮮総督府에 의해, 東洋協会植民専門學校京城分校의 設立이 認可되어, 그管轄下에 둔다.
1918年4月-本校의 拓殖大學으로의 昇格에 따라,「東洋協会京城専門學校」로서 独立. (創立年이 된다) 6月-独立에 따라 開校式을 擧行.
1919年3月-舊・東洋協会植民専門學校의 3年修了者의 卒業式을 擧行. 東京本校에서 派遣된 生徒의 卒業式은 이때로 最後가 된다.
5月-京城崇二洞에 校舎를 新築하려 移転을 完了. 同年寄宿舎도 新築된다.
1920年5月-朝鮮総督府・朝鮮銀行・滿鉄3者出資의 財団法人이 經營母体가 되고,「私立京城高等商業學校」로 改組된다.
1922年3月-官立(國立)「京城高等商業學校」로 改組된다. 本科(修業年限3年)을 設置하고, 同年4月에 開校.
1941年12月-修業年限이 2年9個月로短縮되고, 第22回生의 卒業式을 앞당겨 擧行.
1944年4月-京城法學専門學校와 統合하고,「京城經濟専門學校」로改稱. 修業年限을 다시 2年6個月로 短縮.
1945年8月-日本의敗戰에 따라廃校.
廃校後
1945年10月-韓國人에 의한「서울經濟専門學校」로서 再発足.
1946年8月-國立서울大學校를 構成하는 商科大學이 된다.
여기까지만 쓰고, 經營大學으로 개편은 생략한다/
2016년3월5일 서울商大16回, 최정규最初作成
2025년12월1일, 최정규 再作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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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댓글
작성일
최정규 사무총장님은 58회의 등대이자 휫불 이시지만, 수재 역사학자 이시기도 합니다. 대다수 동문들이 대만협회 (후에 동양협회)가 모체가 되어 경성고상이 1920년 사립으로 설립되어 1922년 공립이 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고 학교를 졸업한 것 아닌가요?
덧부쳐 시모노세끼 조약으로, 조선조 503년 간 명이 청으로 바뀌어도 중국의 굴레에서 못 벗어나 시달리던 현실 속에서, 일본의 덕으로 영은문을 없에고 독립문을 세웠던 반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36년 만에 8.15 해방을 그것도 미국의 힘으로 이루어 졌는데,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고 무조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이 한 것처럼 왜곡하며 친중종북과 반일반미만 외치는 정신 나간 좌파들인 범죄 양아치들이 정권을 잡아 나라를 절단 내고 있음을 빨리 제대로 바로잡아 놓아야 될 중대한 시국임도 우리 동문들이 인식하고 움직여야 할 때라고 봅니다.
최정규 총장 만세!

풍장시님의 댓글
풍장시 작성일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