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Bucket List (3) 鷺鄕 백 기덕(상대58학번 수필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24-06-16 21:45 조회760회 댓글0건본문
나의Bucket List (3)
鷺鄕 백 기덕(상대 58학번)
수필가
내 죽기 전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어찌 만하탄 거리 만 이겠느냐!
내 어릴 적 북쪽으로 날아가던 기러기도 쉬어 간다던 평안남도평원군 로지면 대송리 큰 방죽가에서 카바이트 난로불에 개구리 다리를 구어먹던 어릴 적 깨복쟁이 친구들도 보고 싶고 구운 메뚜기와 번데기는 잘도 먹던 나는 개구리 다리는 칠색팔색 이었는데 개구리 다리 잘도 먹던 그 친구들 지금은 살아나 있는지 보고 싶기도 하며 잠자리 날던 그 방죽가도 걸어보고 싶은 것이다. 아! 가는길이 막혔으니 슬프고 애닯구나!
맨하탄32번가 한국거리(Korea Way)를 걷고 싶은 심정도 아마 같은 마음 일거라 믿었다. 70년대 무척이나 가난했던 나라의 첨병 일꾼으로 세계무역의 중심지 뉴욕에 나와 밤새워 일하며 고향 입맛이 그리워 찾아가던 만하탄32번가 한국타운은 떠나온 고향처럼 그립고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래 한국거리로 가자!
커피 한잔 사 들고 뉴요커처럼 홀짝거리며 걷고 싶었던 맨하탄
거리가 얼마나 소망하던 나의 꿈이었더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꿈을 꾸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
(Only those who dream can achieve their dreams)
라고 시성(詩聖)괴테는 말했다잖더냐!
옛말에有志者事竟成(유지자 사경성)이라‘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자는 마침내 일을 이루어 내더라’하는 옛말이 나를 두고 한 말이라 여기며 세상 이치가 그러하니 어떤 꿈을 꾸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하며50가 삭스 백화점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32가 한국거리까지 가려면 온갖 인종들이 득시글거려‘세계의 4거리’라고도 불리는‘타임스 스퀘어’를 거쳐 가야 한다
내가 이곳‘타임스 스퀘어’를 처음 방문했던70년대 중반만 해도 이곳은 포르노극장.성인용품상점,스트립쇼공연장등이 줄지어 들어서 손님을 끌던 지저분하고 천박한 우범지역이었으나 지금은 연극,뮤지칼 공연장,호텔.대형음식점 등 미국에서 가장 화려하고 번화한 미국 공연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미국 관광의1번지가 된 곳으로 이곳을 가보지 않고는 뉴욕을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듣는 곳이기도 하다.
매일 아침 맨하탄 출근길 허드슨강변에 설치된 뮤지칼 광고를 보고 뮤지칼이 뭐지 하던 시골 무지렁이가 뮤지칼‘켓츠’에서 늙고 외로운 고양이가 행복했던 옛날을 추억하며 부르는‘메모리’
“나는 지나간 추억을 꿈꾸지
그때는 모든것이 아름다웠어
행복했던 그 시절이 아른거리네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 내게로 와줘
찬란한 지난날들의 그 추억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
우리가 서로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우린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지난날의 그 시절처럼…”하고 부르는 이 노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나를 만들어 준 곳도 타임스 스퀘어란 곳이기도 하였다.
이곳 또한 매년12월31일除夜(제야)의 밤에‘볼드롭(Ball Drop)'행사라고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는 전통이 내려오는 곳으로
얼마나 멋지고 가슴 벅차게 하던 새해맞이'볼드롭(Ball Drop)행사였던가!
우리가 새해맞이 행사로 보신각 종을 치듯‘타임스 스퀘어’에서도 년 말 자정(子正) 1분 전부터 광장에 있는25층짜리 원타임스 스퀘어 건물 옥상에 설치된 기다란 깃대의 꼭대기에서 커다란 크리스털 볼이 서서히 내려오면 열,아홉‥셋 둘 하나 하면 새해가 시작되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Happy New Year!를 외치며 새해 축하 인사를 건네며 포옹하거나 입을 맞추기도 하는데 이 행사는1904년 뉴욕타임스 본사 이전을 맞아 신년 축하 불꽃놀이를 한 것이 시초가 되어 이제는 뉴요커는 물론 전 세계 많은 관광객들도 한 번쯤 와보고 싶어 하는 행사로 매년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데 혼자 나온 나는 멋쩍기도 하여 옆 사람에게“니도 새해 복 많이 받어라!”하고 웃으며 말을 건너기도 하였던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였답니다.
새해맞이'볼드롭(Ball Drop)'행사가 열리는 키다리 건물을 바라보며 나 이제 몇 번이나 더Ball Drop행사를 볼 수 있을까!
하며 휘황찬란한 극장 광고와 번쩍번쩍 빛나는 네온사인 불빛 속을 거닐며 서글픈 생각에 자꾸만 뒤 돌아보게 되더라.
50년 전인70년 대만 해도 언감생심 생각도 할 수 없었던 타임스 스퀘어를 비추는LED스크린 광고판에서 우리 삼성전자와LG전자의 멋진 광고를 보면서 우리 한국 참 많이 발전했다고 자랑스럽게 느끼며 돌아서 다시 걸었다.
그래 가자 32가로!
빌딩 숲사이로 멀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해 천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뉴욕의 대표적인 명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바로 옆에 한국 타운이 있다.
32가 거리엔 낯익은 한글 간판이 보인다.책방.한식당.미용실,노래방,한인마트등160여 개에 달하는 한인 업소와 사무실 등이 빼곡하게 들어선 곳으로60년대 만 해도 우범지대였던 이곳이 미국인들에게 케이 타운(K-Town)이라 불리는 새로운 명소가 된 것이다.
그럼 엄마 손맛을 그대로 미국 땅에 전해준 맨하탄32번가 코리아타운은 언제 생겼지?
뉴욕32가 한국인 밀집지역은1960년대 한국 이민1세대가 주거비가 저렴한 퀸즈(Queens)의 라과디아공항 옆 플러싱(Flushing)에 자리 잡아“플러싱 코리아타운”으로 커지다가1970년대 들어서 뉴욕 랜드마크 중 하나인34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바로 아래에서 생업으로 시작한 사업들이 번창 한인상가로 형성되면서 이제는32가5번가(5th Ave)와 브로드웨이(Broadway)사이에 길 이름도 공식적으로 한국거리(Korea Way)로 지정되어 맨하탄 중심부에 자랑스러운 한인타운이 생긴 것이다.
한국식 고기집뿐만 아니라 파리바게트,뚜레쥬르,교촌치킨,정관장 등 한국의 대형 프랜차이즈는 물론이고 요즘엔 한국식 포장마차,호프집,노래방에 미용실과 한의원까지 등장했더라
그리고 이들 상점 앞에서20~30미터씩 줄을 서며 문전성시를 이루는 고객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과반이 현지인이란다.
이 지역에서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는 한글 간판이나 한국의 토속적 음식점은 한때 주한 미군에게‘쪼고레뜨 기브 미’하고 외치던 한국 이민1세대 특유의‘이를 악물고 일하는 성실함’이 이루어 낸 것으로 이제 한식은 세계 미식을 선도하는 첨단 트렌드로 미국에 안착한 것이다.
‘뉴욕곰탕’ ‘우촌’ ‘강서회관’등 맨하탄 한식1세대는1980년대까지 우범지대로 꼽혔던 맨하탄 한복판에‘코리아타운’을 형성했으며 지금은 유명 요리사들이 이끄는 고급 한식당으로 거듭나 뉴욕 미식계의 주류로 확실히 자리 잡고 있더라.
50여 년 만에 다시 찾아온 한국 거리엔 그 옛날 자주 찾던 뉴욕곰탕,우촌,강서회관등 낯읶은 이름은 안 보이고 그 자리엔‘더 큰집’ ‘삼원가든’ ‘감미옥’ ‘북창동 순두부’이모김밥’등 한국 밥집들 여전하여 이제 반겨줄 아줌마는 없지만 현지인들도 줄 서서 먹는다는‘더 큰집(The Kunjip’)에 들려 설렁탕 한 그릇 후루룩 먹으니 엄마가 해주시던‘손맛’은 예전 그대로이더라.
그 옛날 김치 깍두기에 설렁탕 한 그릇,막거리 한 사발에 멀리 떠나온 친구들과 함께 부르던 노래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하고 맨하탄 밤거리가 떠나가도록 소리 높이 부르곤 했는데..
친구들아!다들 어디 갔노?
내가 왔다.보고 싶다 친구들아!
대답 없는 친구들아!보고 잡다 친구들아!
눈물 나게 그립구나,
일찍이 상사 주재원으로 미국에 왔다가 만세 부르고 맨하탄에 눌러앉아 큰 열쇠가게(Lock Smith)를 열어 미국인 돈주머니를 털어 모교에2억 원이란 큰돈을 기증한 뉴욕 큰 형님하며,
세계 최고층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사무실을 차려 각종 의류와모자,양말등 온갖 섬유제품을 한국에서 들여와 미국 시장에 팔던 경상도 문둥이 친구하며,그 덕에 바라만 보던 엠파이어 빌딩 창문 너머로 맨하탄 거리도 내려다볼 수 있는 호사도 누리곤 했는데,
또 한 친구 맨하탄 부촌80가에 앤틱가구점을 열어 고가구.도자기,화병,램프를 취급하던 친구,그 친구 덕에 고풍스러운 도자기(陶瓷器)램프 불빛 아래에서 헤밍웨이도 읽곤 했는데..
대기업 상사 미주 주재원으로 파견 나와 손짓발짓 섞은 서툰 영어로 맨하탄 거리를 누비며 우리 제품 판매하던 친구들하며
그들이 벌어들인 돈이 우리나라 경제발전 초석을 놓았었는데…
친구들아!다들 어디 갔노?내가 왔는데…
왜 아무도 없나?
아!세월이 하룻밤 꿈처럼 갔네그려!
아!인생이 하룻밤 꿈인 것을 왜 미처 몰랐던가!
울면서 밥집을 나오더라.
32가 한국거리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젊은이들의 꿈과 낭만이 넘쳐난다는 소호(Soho)지역 뉴욕 대학가 거리도 걷고 싶고 작은 키,납작한 코도 기죽지 않고 뽐내고 당당히 걸을 수 있는 차이나타운 단골집에 들려 게(Crab)튀김 요리도 먹고 싶은데 딸래집에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을 할멈 생각에 발길을 돌리었다.
흑인 불량자들이 많은 맨하탄 거리에서 혹여 흑인 불량자들에 폭행이나 당하지 않을까 맨하탄행을 극구 말리던 할멈에게 동네 도서관 간다고 거짓부렁이하고 지하철 타고 하드슨 강 건너 이렇게 맨하탄을 누비고 다니는 걸 알면 할망구는 기절초풍에 혼비백산 까무러질 터인데 빨리 집에 돌아가야지 하며 가까운 펜스테이션(Penn Station)기차역으로 가게 되더라.
허나 나는 내일 맨하탄에 다시 나올 거다.
내가 누구던가!
내가 바로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The Greek Zorba)아니던가!
“인생은 원래 말썽입니다.
죽어야만 끝나죠,허리띠 풀고 말썽 찾아다니는 게 인생이라니까요!
사람은 왜 죽죠?말해줘요!
책을 읽고 그거 하나 몰라요?
책이 그런 걸 못 가르쳐주면 대체 뭘 가르쳐주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그리스인 조르바^중에서
--다음 호에 계속--
----------------------------------------
필자의 양해를 얻어 [글의 세계] 2024년 여름호에서 전재함.
유노상(상대 58학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