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Bucket List (2) : 鷺鄕 백 기덕(상대 5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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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24-03-22 18:34 조회981회 댓글0건본문
나의 Bucket List (2)
鷺鄕 백 기덕(상대 58학번)
고향이란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난 곳을 말한다고들 하는데 내가 태어난 북쪽 땅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하는 평원군 로지면 대송리(平原郡 鷺池面 大松里)는 땅이 막혀 못 가는 처지인 나에게는 미국 생활을 처음 시작한 포트 리(Fort Lee)가 나의 미국 고향인 셈으로 이참에 딸들 덕에 미국 고향 땅을 밟았으니 반쯤 소원은 풀었으나 내가 놀던 맨하탄거리를 걸어보는 것 또한 죽기 전 꼭 가보고 싶은 곳(Bucket List) 이기도 하다.
종이 커피 컵을 손에 들고 커피를 홀짝이며 뉴요커처럼 맨하탄 거리를 여유롭게 걸어보고 싶고, 5번가 패션 거리를 거닐다 삭스(Sakes)백화점에도 들어가 보고도 싶고, 웅장한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St.Patrick's Cathedral)에 들어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성가합창단 소리도 들어 보고도 싶은 것이다. 그리고 또 매년 크리스마스철이 되면 성탄 츄리에 점등식이 열리는 록펠러센터 아이스 링크에도 가보고 싶고,한 해가 가는 마지막 날 둥그런 볼이 하늘에서 내려오면 열! 아홉! … 셋! 둘! 하나! 와! 하며 새해를 맞는 관중 속에 끼고도 싶어 타임스스퀘어(광장)도 가보고 싶기도 했다.
내가 살던 포트리에서 맨하탄에 가려면 허드슨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철탑 2층 현수교인 지워싱턴다리(GWB)를 건너야 한다.
1931년 이 다리가 처음 개통했을 때는 6차선이었으나 1946년에 8차선으로 확장되었고 1962년에는 1층 다리 아래에 복층으로 하갑판 6차선이 추가로 만들어져 지금은 14차선의 거대한 2층다리가 되어 하루 30만 대의 차가 지나다니는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다리가 된 것이란다. 그런데 이 다리를 처음 만들 때부터 그런 확장계획을 세웠다니 양키들 참 놀랍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매일 아침 통과료 1불50전을 내고 이 다리를 건너 허드슨 강변길 따라 차들이 꼬리를 물고 줄지어 간다는 ‘범퍼 투 범퍼’라는 말도 이때 처음 배우며 맨하탄의 중심인 58가 Park Ave 460번지 뉴욕지점으로 출근을 했더랬다. 차를 주차장 건물 지하에 맡기고 커피 샵에서 커피 한잔 사 들고 두어 블럭 떨어진 20여 층 건물에 출근하는데 그 건물엔 한국총영사관 한국문화원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관들 틈 속에 은행사무실은 10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구구셈도 못 외어 벌 받느라 집에도 못 가고 교실에 남아 구구셈 외우던 바보 멍텅구리가 세계의 중심 뉴욕 한복판에 책상을 깔고 일하다니 3대가 덕을 쌓아야 지리산 천왕봉 일출을 본다는데 이게 웬 복인가 했더랬다.
오늘 50여 년 만에 460번지 파크애비뉴에 왔다. 모두가 예전 그대로더라. 건물도 옛날 그 모습 그대로요 건물 정면에 태극기도 예전처럼 펄럭이고 멀리 보이는 크라이슬러 은탑건물도 여전하더라.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추억은 그 자리에 남는다고 단 하루만 이라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였다.
이제 남은 인생도 얼마 안 되는데 언제 다시 이 자리에 올 수 있겠나! 마침 건물 입구에서 한국 직원으로 보이는 여인에게 사진 한 장 찍어달라 부탁하였다. 460번지 앞에서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지 아마!
그래 팔순 노인이 된 나는 지금도 버버리코트 깃을 세우고 입는다. 잊지 못할 추억이 있어서이다.
항상 그러하듯 점심때가 되면 사무실 근처에서 햄버거나 핫도그로 점심을 때우고 커피 한잔 사 들고 홀짝거리며 마치 뉴요커가 다 된 듯 5번가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버버리코트 옷가게엘 들렸다. 당시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던 tv 드라마‘형사 콜롬보’에서 콜롬보 형사가 걸치고 다니던 코트를 나도 한번 입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때 나를 맞이 해준 늙수그레한 할아버지뻘 세일즈맨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는 골라온 트렌치코트를 나에게 입혀주고 코트 깃을 세워주더니 “젊은이! 이렇게 입어야 10년은 더 젊어 보인다네!”
와! 이럴 수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이렇게 폼나고 멋질 수가! 그날 이후로 난 티셔츠를 입어도 옷깃을 세운다.
모두들 날 아직 70세로도 안 보인다고 말하더라. 그럼 난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래요” 하며 능청을 떨곤 한다.
그때 산 버버리코트 아직도 내 옷장에서 낡은 모습으로 날 기다리고 있다. 할망구 이젠 그만 버리라고도 하지만 버릴 수가 없다. 내 청춘을 어이 버릴소냐! 해서이다. 추억 속의 그 영국 버버리 옷 가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더라. 아! 흘러간 세월이여! 했지요.
이제 5번가를 아래 미드타운쪽으로 50가까지 내려간다. 맨하탄에 나오면 이 거리를 꼭 들려야 한다
뉴욕 록펠러쎈타도 이 거리에 있고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St. Patrick's Cathedral)도,삭스(Sakes Fifth Avenue)백화점도 서로 어깨를 맞대고 여기에 모여있다.
록펠러!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는 미국 성공 신화와 부(富)를 상징하는 이름, 우리가 전쟁으로 춥고 배고팠던 시절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이름 록펠러, 나보다 꼭 100년 앞서 1839년 떠돌이 약장수 아버지와 신앙심 깊었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더라.
그 시절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었던 미국 땅에서 그는 어머니에게 정직과 근면, 절약하는 삶의 방식을 배워 당시에는 벤처와도 같았던 석유산업에 뛰어들어 스탠더드 오일을 창업하여 부를 이루었는데 그 당시 <포브스>가 미국 역사상 최고 부자로 록펠러 1세를 꼽았다고 한다.
그런 록펠러 가문이 1931년 맨해튼 중심 50가 일대에 아이스 스케이트장, 라디오시티 뮤직홀, NBC스튜디오 등 록펠러 센터를 건설하였는데 관광객이 주로 찾는 아이스 링크장에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주어 인간에게 문화를 안겨 주었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선지자(先知者) 프로메테우스의 멋진 황금 동상 아래 우리 연아선수처럼 빙빙도는 스케이터들 보는 재미도 있고 크리스마스 철에는 성탄츄리에 점등식이 열리는 뉴욕의 상징이 되는 관광의 명소로 맨하탄에 오면 발길이 저절로 이곳으로 오게 되는 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장소가 된 곳으로 만국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우리 태극기를 보고 가슴 뿌듯함도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아! 그런데 오늘은 플라자 입구에 낯선 조형물이 서 있더라. 한국 작가 이배의 ‘Issu du Feu(불로 부터)’라는 집채만 한 대형 ‘숯더미’작품이 플라자 입구에 턱 버티고 서있어 지나던 사람들이 거대한 ‘숯더미’를 보고“이게 대체 뭐지?” 하며숯 더미를 배경으로사진을 찍고들 있더라.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맨하탄 한가운데 한국 작가의 작품이 놓여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였는데 불과 70여 년 전 만 해도 전쟁으로 온 나라가 숯덩어리였는데 전쟁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한 역시 대단한 민족이여! 했지요.
록펠러를 만나보았으니 이제 바로 길 건너 거대한 고딕양식의 첨탑 2개가 세워져 있는 가톨릭교회 대성당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St. Patrick's Cathedral)으로 건너간다.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은 뉴욕 최초의 성당으로 한때 세금 미납으로 경매로 넘어간 대지를 신부님이 인수 고아원으로 사용하다가 1858년에 성당 짓기 시작하였으나 남북전쟁(1861-1865)으로 한때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가 20년 후인 1878년에 완공되었으며 1976년에는 미국의 국립 사적지로 지정되어 만하탄에 오면 꼭 들려야 하는 명소가 된 곳 이기도 하답니다.
난 가톨릭 신자도 기독교인도 더구나 이슬람 신자도 아니다. 초등학교 땐 동네 성들 따라 사탕 얻어먹는 맛에 예배당에 나가 찬송가도 따라 불렀고 고등학교 시절엔 예쁜 여자 친구 만나려 신부님한테 교리 공부도 했었더랬다. 아마 동네에 이슬람사원이 있었더라면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카바 신전이 있는 메카를 향해 하루에 세 번 무릎을 꿇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나는 어릴 적 엄마 따라 절엘 가곤 했다
절 입구에 있는 눈을 부릅뜬 사천왕상이 무서워 엄마 치마폭에 숨어서 절에 들어가곤 했다. 지금도 산에 오르다 절을 만나면 어김 없이 절에 들려 부처님 앞에 삼배를 올린다.
첫 일배(一拜)는 우리 조국 민주 평화통일이요
두 번째 배(拜)는 아빠 엄마 극락왕생하시옵기를
세 번째 배(拜)는 자식들 건강하고 복 받기를 엎드려 부처님께 빌곤한다. 종교에 관해서는 나는 세계인인가보다. 훗날 하늘나라에 돌아가면 모두 하늘님 앞에서 만날 거라 믿는 것이다.
나 오늘은 성당 앞 층계에서 사진 찍는 관광객 틈새를 비집고 웅장한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카톨릭 대성당에 들어 선다. 대성당에 들어가는 순간 웅장함과 성스러운 아름다음에 압도되더라. 아치형 천장 아래 성모상과 휘황찬란한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이 눈에 들어오기에 성부 성자 성신하며 십자 성호를 긋고 예배석에 앉았다. 8천여 개 달한다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마치 천국에서 울려 오는 듯 은은하고 우아하여 내 마음도 편안해지더라. 여기가 바로 천국일세 하였다. 성당에 앉아 절간에 앉은 듯 두 손을 모으고 천주님께 조국통일, 극락왕생. 부귀영화 삼배 기도를 올렸다.
천국을 돌아 나와 바로 옆 삭스 백화점에 들린다. 가난한 나라 가난한 월급쟁이 주제에 웬 고급 백화점이다냐 하였지만서도 구경하는 덴 돈 안 내도 되니 자주 들리기도 하였더랬다. 그때 배운 눈썰미가 후드티 셔츠요 청바지 폼이다. 50여 년 전 그 시절만 해도 후드티(모자 달린 운동복)는 서울에선 볼 수없던 처음 보는 옷이었는데 초등 꼬마가 후드티를 허리에 질끈 매고 학교에 가는 모습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후드티를 입으면 활동적으로 보이는 데다 모자가 있다보니 춥거나 비 올 땐 모자로 몸을 따듯하게 보호할 수도 있고 더울 땐 벗어 허리에 질끈 매고 다니면 금방 마라톤에 나갈 동선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추운 겨울철엔 후드티에 코트를 덧입고 코트 깃을 세우면 추위는 물론 콜롬보형사도 울고 갈거라 믿었던 나는 팔십 넘은 지금껏 후드티만 입고 산다.“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말이 있는데 팔십 노객이 젊게 입으니 마음도 젊어지더라. 가는 세월을 붙잡으려 애쓰고 하소연해보았자 다시 올 리 없고, 오는 세월을 거부해보았자 막을 수도 없다는 데 다가오는 시간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지나가는 세월을 미련 없이 떠나보낼 수 있는 삶의 철학을 가져보고자 해서이다.
맹자님도 왕자불추 래자불거(往者不追 來者不拒)라
“떠나가는 것은 쫓아가지 말고 오는 것은 막지 마라.”고 말씀했다잖으냐!
마음이 젊은 만큼 젊어지더라. 젊게 산다는 생각이 실제로 나이 듦을 방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자신이 실제 나이보다 젊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며 신체까지도 건강해진다고 한다더라.
너무 오래 삭스백화점에 머믈었나! 점심도 못 먹어 배도 고프니 설렁탕도 먹고 늘 반겨주던 식당 아주머니도 보고 싶다. 50년 전 대학 동기들과 돌아와요 부산항을 목놓아 부르던 브로드웨이 34가 눈물 나게 그립다. 그래 가자! 코리아 스트리트 34가로!
에서 轉載함: 柳魯相(경제학과 58학번)
위 글은 필자 백기덕 동문의 아래 <나의 Bucket List(1)>의 이은 글입니다.
(첨부)나의 Bucket List(1)==>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총동창회 (sangd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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