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연 칼럼> 퇴임 대통령 예우 :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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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22-06-27 12:02 조회2,422회 댓글0건본문
퇴임 대통령 예우
류동길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대통령이 퇴임하면 관저(官邸)를 떠나 사저(私邸)로 돌아간다. 그러나 한 두 분의 예외가 있을 뿐, 취임 전 살았던 모습 그대로의 사저로 돌아간 대통령은 없다. 퇴임 이후에도 전직 국가원수로서 경호·의전을 받게 돼 있어 별도의 경호 시설과 경호·비서진이 사용할 공간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취임 전에 살던 집을 헐고 신축하거나 새로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과정애서 아방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저를 크게 또 호화스럽게 짓는다는 소리가 들렸다.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 같다’고 하지만, 퇴임 대통령이라고 해서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욕망이 왜 없겠는가. 청와대 관저의 침실이 80평이라고 했다. 청와대 관저 생활에 익숙해 있다면 웬만한 수준의 집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까지 지낸 마당에 무엇을 더 바란다는 것인가.
문재인 전 대통령도 역대 퇴임 대통령처럼 사저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취임 전에 살았던 경남 양산 매곡동 사저를 팔고 같은 양산의 평산마을에 새로운 사저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농지를 매입한 것부터 불법 시비를 불렀다. 이에 대해 당시 문 대통령은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김세형 매경 논설고문은 얼마 전 ‘문재인 은퇴 후 너무 호화판이다’란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비서관 3명, 운전기사 1명, 60명이 넘는 경호·방호 인력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각종 지원과 함께 월 1400만여 원(재직 중 보수의 95%)의 연금을 받는다. 그것도 전액 면세로. 서민들은 쥐꼬리만 한 국민연금을 받으면서도 세금을 내는데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거액의 연금에 세금 한 푼 안 낸다니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양산 사저의 경호동은 475평 규모로 막대한 국민세금이 투입됐다. 전직 대통령은 어떤 평가를 받건 국가의 중요한 인적 자산이다. 당연히 보호의 대상이고 경호를 잘해야 한다는 점에 반대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최첨단 시설과 장비가 갖춰진 오늘날에도 그런 규모의 인력이 과연 필요한가는 의문이다. 경호동은 국가재산이기 때문에 먼 훗날 국가에 반납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그곳에 있는 경호동이 무슨 용도로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를 한 번 생각해 보라. 국가재산 반납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퇴임 대통령의 사저와 경호는 문 전 대통령에 관련된 문제만은 아니다. 특히 대통령이 되기 전 단독주택에 살았건 아파트에 살았건 퇴임 후 사저 문제는 앞으로 또 불거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대통령의 사저와 경호 문제를 비롯한 퇴임 대통령의 예우를 차제에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논란으로 그칠 게 아니다. 국민에게 뜻을 물어야 할 사안이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임 시절 최악의 대통령에 뽑힐 만큼 평가가 나빴지만 퇴임 후에는 국민이 사랑하는 전직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조촐한 집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란 책자로 널리 알려진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은 현역 시절 대통령 관저와 별장을 노숙자와 난민 고아들에게 내주고 자신은 취임 전에 살던 허름한 농가에서 지냈다. 그는 퇴임사에서 "저는 떠나는 게 아니라 여러분 속으로 들어간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국민은 그를 ‘페페(할아버지)’란 애칭으로 불렀고, 그가 대통령 퇴임 후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다 2020년 10월 정계에서 은퇴하자 “그라시아스(고마워요), 페페”를 외쳤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은 퇴임 후 본인은 물론 아내와 가족에게 지급되는 연금도 받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주민들과 어울려 노후를 즐겼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길 일이지만, 우리는 국민의 마음에 오래 남을 대통령을 보고 싶은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다지만 우리가 퇴임 대통령에게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우를 해 주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대통령은 국민의 공복이다. 그가 봉사한 노고에 적절한 예우가 당연히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 예우는 국민 일반이 수긍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선사연 칼럼. 2022-06-27>에서 전재
위 글 올린이:柳魯相경제과 5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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