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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트레킹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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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무정 작성일 04-12-08 07:37 조회 4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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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트레킹을 가다. - 김 무 정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Annapurna Base Camp)-약자A.B.C 4,13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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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3년 전 9.11 미국 테러발생으로 좌절되었던 네팔 트리킹이 드디어 2004년 10월 30일 토요일 아시아나항공에 탑승한 후에야 실감이 나는데 같이 갈 수 있는 친구가 없으면 안 가는 것이 좋겠다는 마누라와 가족들을 설득시키기가 연간 어렵지 않았던 차에, 마침 뉴욕거주 친구가 네팔에 갔다 온 후 만났더니, 혼자라도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외국사람들도 혼자 오는 사람이 많다면서, 괜찮다고 설득하여 주는 덕분으로 가족의 승낙을 받는 어려운 과정들이 머리를 지나가는가 하면, 또 친구들은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나이 70에 힘든 트레킹을 가다니 “미쳤다” “까분다” “돈주고 고생한다” 하는가 하면 “장하다” “용기가 부럽다” “야,존경스럽다”등 여러말이 오고간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중에 이미 비행기는 카타만두를 향하고 있었소.



카타만두 공항에서 교포가 하는 식당까지 가는 길이, 마치 50년전 타임머신을 타고, 1950년 한국에 다시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소. .신발 벗은 사람들, 누추한 옷, 싸구려 상품의 진열, 컴컴한 거리, 물레질하는 모습, 찢어지게 가난한 모습들이 꼭 6.25동란 후 우리의 모습과 꼭 빼어난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소. 이렇게 가난한 나라일까?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트레킹 준비에 들어가는 날이니 가슴이 설레이지 않을 수 없었소.



첫째날 (10월 31일)



여기서 포카라로 이동하는데 18인승 프로펠라기를 30년만에 처음 타보는 것도 흥미로웠고 버스로 가면 7시간 걸리는 곳을 40분만에 가니 여간 편리하지 않았소. 비행기에서 내려 봉고차로 2시간 정도 갔는데 중간에 입산신고를 마치고 거의 도로가 없는 곳까지 오니 네팔인 포터(셀파) 들이 수 십명 모여 있는 것이 종착지임을 쉽게 알수 있었소.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것은 포터들이 30-40kg나 되는 무거운 짐들을 메고 올라가는 것을 보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소. 어깨가 아니라 머리에 모든 힘을 집중시켜 마치, 이고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일면 불쌍하기도 하고, 측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소.



오늘 산에서 보내는 첫날밤이 될 팅게퉁가(1,540m) 롯지 (간이 숙박시설)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산속으로 넘어갔고, 가지고 간 오리털침낭(스리핑백)이 어떻게 그렇게 포근한지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호기심을 가득히 안고 산에서 첫날밤을 보냈소..



둘째날 (11월 01일)



날씨는 화창하고 춥지도 않고, 먼 산의 경치는 그림과 같고, 공기도 깨끗하니 기분이 여간 상쾌하지 않았으며, 아침식사도 네팔인 쿡이 한국요리를 어떻게 잘하는지 탄복할 정도였소. 흰쌀밥, 미역국, 무우무침, 김, 소고기 장조림 그리고 누룽지 맛있게 먹었는데, Guide왈 두 사람의 네팔 쿡은 TNC(여행사)에서 수년간 한국 음식을 만드는 훈련을 받았다고 하였소.



한 시간 정도 걷다가 휴식을 취하는데, 그때마다 네팔말을 가르쳐주는데 왜 그렇게 쉽게 외워지지 않는지, 외우고 또 보기를 반복해도 ......

나마스테 (안녕하세요, 안녕) 탄내밧 (감사하오)

비스다리 (천천히) 치토 (빨리 빨리)

좌웅 (가자) 좌오스 (건배)



산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두손을 모아 “나마스테”하면 상대방도 꼭 같이 “나마스테”하니 이말은 네팔 도착하면 전부 알아주는 말로 통용된다고 하오. “나마스테”는 하루에 20번도 넘게 하게 되었지요. 만나는 사람마다 - 외국인들이나 네팔인 모두에게- “나마스테”했으니 말이오.



오늘 자게 되는 고라파리 (2,750m)까지 가는데는 계속되는 계단식 오르막길과 갑자기 하늘이 보이지 않는 원시림속으로 걸으니 세계 어디에서 이런 좋은 경치를 볼 수 있을까? 첫날의 Trekking은 6시간 30분이 소요되었소.



셋째날 (11월 2일)



네팔 오면 꼭 들린다는 푼힐 전망대를 가기 위해서 4시에 기상하여 헤드라이트(Head Light)를 머리에 끼고, 어두운 길을 올라 가는데 어떻게 힘이 드는지, 쉬다가 가다가를 반복하면서 하늘의 유난히 밝은 별을 보면서 행여나 해뜨는 광경을 놓칠세라 땀이 범벅이 되도록 걸어 전망대에 도착하니 해가 저쪽 산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지 않겠는가. 일출을 카메라에 담고 둘러보니 히말라야 연봉인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봉 모두를 다 볼 수 있으니, 왜 사람들이 푼힐전망대를 보고 싶어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소.



전망대에서 고라파니로를 다시 내려와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데우라리 (2,990m)를 거쳐 타다파니로 가는 길은 멀고도 경사길이 많고, 일행중에는 가슴이 조여 온다하고, 가족의 일원인 13살짜리 초등생은 속이 메스껍다고 못 걷겠다고 주저 앉지를 않나, 머리가 아픈사람, 다리가 무거운 사람등 모두가 지친 하루였는데 9시간 30분을 걸었으니 지칠 수 밖에..

그런데 땀을 많이 흘리면 몸도 끈적거리고 고약한 땀냄새가 많이 나는데 이상하게도 땀냄새도 안나고 몸도 개운하니 이 모두가 공기가 깨끗하고, 습기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소. 일교차도 심해져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추워서 찬물로 손을 씻기가 싫을 정도였소.





넷째날 (11월 3일)



오늘도 하늘은 쾌청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마치 우리들을 축복해 주는 것 같이 포근한 날이었소. 어제는 너무 고생했다고 오늘은 산행시간이 타다파니에서 촘롱(2,170m)까지 6시간으로 끝났소. 네팔사람들은 사진 찍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는 어질고 순박한 사람들로 느껴졌소. 길가의 소똥, 말똥에 파리 없는 것을 보니 원래 대자연은 이렇게 깨끗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소.



. 산에서 내려오는 빙하수 녹은 물은 폭포가 되어 산마다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고 계곡의 물소리는 1,000m이상 위에 있는 우리들 귀에도 우렁차게 들리니 히말라야 산맥의 수천개의 계곡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것 같소.



촘롱(2,170m)에 도착하니 전기, 전화, 뜨거운 물이 있고, 닷세만에 집에 안부전화도 하고, 4일만에 샤워도 하고 저녁에는 양을 한 마리 잡아 삶아 주어서 실컷 먹고, 여러지역에서 온 사람들과 만나 얘기도 할 수 있는 큰 롯지군이었소. 일행 6명중 한 가족 3명은 내일 하산하고, 나를 제외한 2명은 제주도에서 한라산만 다녔다고 하는 65세 남자, 그리고 도봉산에만 다녔다고 하는 57세 여자와 한국인 Guide (Y팀장으로 킬리만자로를 6번 다녀온 전문 산악인), 네팔인 쿡 2명, 포터 3명, 모두 9명은 A,B.C까지 가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이었소.



다섯째날 (11월 04일)



오늘은 촘롱에서 도반(2,540m)까지의 일정인데, 일가족과는 헤어지고, 9사람이 걷는데 네팔인 5명은 일찌감치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앞장서 갔고, 우리들은 다시 원시림을 걷는 행운이 있었소. 계속 내려 가는 계곡 끝이 되면 다시 가파른 언덕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니 도반 도착이 오후 4시, 오늘은 6시간 소요 되었소. 고산이라서 그런지 잠을 숙면할수 없다는 것이 고통중의 하나라고 생각 되네요.



여섯째날 (11/05일)



오늘은 가장 힘드는 마차푸차레 베이스켐프(M.B.C. 3,700m)까지 가는날, 3시간 걸어 히마라야롯지 (2,940m), 데우라리롯지 (3,200m)를 지나오는데 숨이 가쁘기 시작하고, 다리가 천근 같이 무거워, 여태껏 고산병에 잘 적응해 왔는데, 조금 두렵기도 하고 행여나 못 걸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조금씩 되면서 물을 계속 마시고, 쉬고 하였소. 크고 작은 폭포와 발 아래 천리길 같은 깊은 계곡이, 오를 수록 더 깊어지는, 험준하고 좁은 길이 계속 이어지는 데, 정말 발 한번 잘 못 디뎌서 아차 하는 순간 다시 시체도 찾을 수 없는 나락으로 사라지는 생각 만해도 소름이 끼치는 길을 계속 올라가야 했소.



오후 M.B.C까지 가는 길은 높고. 힘들고, 숨이 너무 가뻐서 50보 걷고 쉬다가 물마시고, 다음은 100보 걷고 쉬고, 다음은 140보 걷고 쉬고 물마시고, 이렇게 힘든 산행이 이어졌는데 제주도에서 온 H사장은 물도 안 마시고 걷기에 제주도 조랑말이라고 별명을 붙여주고, 도봉산에 미쳤다는 주부는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울기 일보 직전의 표정인데 무엇이라고 위로 할 수 없어 M,B,C, 까지 얼마 안 남았다고 격려해 주다보니 벌써 오후 4시 30분, 시계를 보니 7시간을 걸었고, 날씨가 갑자기 춥고 어둡기 시작하는데, 감기 걸리면 고산병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젖은 옷을 따뜻한 옷으로 갈아 입고 어렵게 잠을 청할 수 있었소.



일곱째날(11월 06일)



잠을 잘 자지 못하고 3시에 기상 하여 헤드라이트를 끼고 출발하니 몹시 춥고, 다리는 무겁고, 숨은 가쁘나 이제 마지막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일념으로 걷고 걸어, A.B.C 도착하니 한없이 기쁘고 4,130m 표시된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일출을 기다려 사진도 담고, 바로 앞산인 안나푸르나산을 쳐다보니 별로 높아 보이지도 않고 (여기서는 4,500m 정도) 오히려 정다운 산으로 느껴졌소. A.B.C.까지는 2시간 30분 소요되었는데, 다시 M.B.C 까지 하산하니 1시간 30분 총 4시간을 걷고 나니, 아침 식사 후 온 만신에 피로가 오고, 진이 다 빠져, 문자 그대로 기진맥진하여, 옷 벗기도 싫고 , 한 발자국도 걷기가 싫어서 이래 가지고는 도저히 못 가겠으니, 1시간 휴식 시간 하자고 해서 바로 침낭 속으로 들어가 1시간 자고 나니 아침 10시, 잠이 보약인지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하여 짐을 챙기고 하산 준비를 하였소.

역시 하산 길은 즐거운 것, 힘은 적게 들지만 하산길은 등산인에게는 더 위험한 것 이므로 더 천천히 걸어 밤부(2,335m)까지 오니, 오늘 산행시간이 10시간 30분소요, 제일 많이 걸은 날이었소.

어제 고산에서는 술을 삼가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 Guide가 내일은 하산길이니 술을 드셔도 좋다고 하기에, 네팔 RUM 주를 마시니 금방 취해서 다음날 5:30까지 완전 숙면을 함으로서 큰 피로를 푸는 밤이 되었소.



여덟째날(11월 07일)



숙면한 탓인지 참으로 기분 좋은 아침, 하늘은 깨끗이 높게 보이고, 기온은 2,335m 고지대여서 춥지도 않고 오늘 저녁 지누(1,780m)에서 마지막 롯지 생활하면, 내일 오후에는 문명세계인 포카라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니 즐거운 마음이 가득하였소. 가파른 길을 뒤로 돌아보니 내가 언제 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는지 참 대견 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소.



지누는 마지막 롯지이고 내일은 네팔인들이 귀가하므로, 나의 소형 라디오, 청바지, 메트리스, 모자, 양말 등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기로 하고, 종이에 1.2.3...표를 만들어 1번을 잡은 사람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을 먼저 갖도록 하였더니, N포타가 1번이 나왔다면서, 라디오를 짚어 가지고 갈 때 그의 순진하고 좋아하는 표정은 두고두고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소. 오늘은 7시간 30분 산행에도 피로를 전혀 느끼지 않는 날이었소. 마지막 롯지에서 오리털 침낭을 애인 같이 안고 산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소.



아홉째날(11월 08일)



지누에서 포카라 가는 마지막 날 날씨가 좋아 반바지, 반소매로 갈아입고 깊은 계곡 길을 2시간 내려오니, 강가 길이 되면서 완만한 내리막길을 6시간 걸어오니 벌써 오후 3시, 처음 봉고차에 내려 등산하기 시작한 바로 그곳에 도착하자 마자 나는 Guide, 네팔인 5명, 일행 2명 모두에게 악수를 청하고 아무 일 없이 끝까지 온 것에 감사하면서 네팔인 5명과 작별의 허깅을 하였소.



Guide와 우리 일행 3명은 봉고차로 포카라에 있는 BLUE BIRD HOTEL 도착, SHOWER하고 저녁 시간 될 때까지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A.B.C 갔다 오는 길이라 하니, 식당주인왈 자기도 A.B.C.갔다 왔는데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어제도 한국 스님 한분이 고산병에 걸려 3일간 쉬다가 돌아갔다면서, 나이를 묻지 않소. 나이 많은 일본 사람들과 구라파 사람들이 네팔 TREKKING을 즐기고 있는데, 한국 노인들은 안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혼자 중얼 거려 보았지요.



열흘째(11월 09일)



GUIDE의 동분서주한 덕분으로 비행기표를 어렵게 구해 타고 40분만에 카타만두에 와서 힌두교 사원을 관광했는데 대낮에 장작불을 태우는 것이 뭣인지 물으니 ,사람 시체를 화장해서 그 재를 저강(내천)에 뿌린다고 합니다. 시내 변화가도 둘러보고, 사람 사는 것, 우리 6.25 때를 다시 연상시키는데, 이정우 경제정책위원장을 네팔에 데려다가 보여 주었으면, 그가 분배 정책을 포기할 수 있을까 상상도 해 봤소.



네팔에서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우리 옛날과 같이 너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것과 60여 종족이 있다지만 모두 어질고 순진하게 보이는 점이 맘에 닿아 왔소.



히말라야 산맥의 크기는 길이가 2400km ,폭이 200-300km에 에베레스트를 포함하여 8000m 이상 고봉이 8개가 있는데, 그 중에 안나푸르나 봉의 언저리까지 (4,100m)까지 무려 62시간을 걸어 갔다오고 싶은 그곳을 갔다 왔으니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웰빙이 아닐까 생각하오. 다음날 새벽 3시 ROYAL NEPAL 항공이 지상을 벗어날 때 내년에도 다시 네팔을 올수 있을까............탄네밧.